“무릇 청문(聽聞)하는 도는 세밀하게 힘쓰지 않으면 밝게 살필 수 없고, 차츰차츰 쌓이지 않으면 깊이 이를 수 없다. 희로애락과 시비, 선악이 모두 청문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또한 청문으로 말미암아 사라지는 것”이라고 조선 후기 유학자 최한기가 설파했다. 청문은 남의 말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옳고 그름을 현명하게 판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청문(聽聞)의 사전적 의미는 국회가 의정활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증인과 참고인을 불러 필요한 증언을 듣는 제도다. 청문회 원조 격인 나라는 미국이다. 1787년 헌법 제정 당시부터 실시해온 이래 청문회 없이 법안이 입법되는 사례가 없을 정도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청문회는 1973년 워터게이트 청문회다. 특위 활동기간이 무려 1년 4개월이었다. 80일 동안 진행된 청문회는 당시 미국 3대 방송사가 순번제로 전국에 생중계했다.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임기 중 사임했다. 미국의 상원정보위원회 조사청문회의 경우 수백만 달러 예산에 50∼70명의 인원을 지원받는다. 미 연방수사국(FBI) 등 관련 기관으로부터 조사관을 파견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1988년 청문회 제도가 도입됐다. 그해 13대 총선에서 정당정치가 정착된 이래 최초로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돼 이른바 5공 청문회가 열린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언론통폐합에 관한 일련의 청문이었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로 온갖 소문의 실체와 새로운 비리들을 들춰냈고, 국민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도 다소나마 풀어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 5공 청문회 출석 재벌총수들의 자재 6명이 나란히 서는 데자뷰가 연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건희 전 회장의 아들), 정몽구 현대차 회장(정주영 전 회장의 아들), 구본무 LG회장(구자경 전 회장의 아들), 최태원 SK회장(최종현 전 회장의 아들), 조양호 한진회장(조중훈 전 회장의 아들), 신동빈 롯데회장(신격호 전 회장의 아들) 등이다. 이들 그룹 총수들은 하나같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청문회로 대물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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