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이 보도된 이후에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에 청구된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데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당장 헌법재판소 시설 전체에 대한 도·감청장치 존재 여부에 대하여 대대적인 수색이라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비서실장 김기춘이 마술(魔術)이라도 부려 헌법재판소의 심판 과정을 꿰뚫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퇴마사(退魔師·Exorcist)라도 급히 불러야 하겠다.
구 헌법에서의 ‘헌법위원회’라는 것이 너무나 유명무실하였기 때문에 87년 개헌 당시 다시 도입된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매우 컸다. 헌재는 그동안 국민의 인권을 제한하던 각종 악법과 유신 시절의 긴급조치 등에 대한 잇따른 위헌 결정을 내려 국민의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는 헌법 자체를 보장하고 권력을 통제하여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그런데 통진당 해산 결정은 헌법재판소의 위상을 급격히 추락시켰다. 만약 이미 고인이 된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 기재된 것처럼 헌법재판소가 청와대와의 교감 하에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으로 총 13석을 얻어 새누리당·민주통합당에 이어 원내 제3당이 되었던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결정을 내리고 만 것이라면 헌법재판소는 더 이상 존립할 근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다.
방미 중인 이혜훈 의원은 탄핵 찬성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사정기관으로부터 협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탄핵소추안은 가결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헌법재판소다. 헌법재판소는 미리 관내 도·감청시설 점검부터 한 후에 열 일을 제쳐두고 탄핵심판사건에 매진하여 줄 것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국회 포위를 벌인다는 국민은 금요일 이후에는 다시 헌법재판소 포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