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6∼7일 이틀간 진행된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의 청문회에 나와 대부분을 모른다고 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청와대 참모와 ‘친박(친박근혜)계’ 국회의원, 장·차관들이 새삼 주목된다.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발뺌하는 데 대해 무책임이 극에 달했다는 분노의 여론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정치에 ‘배신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미 박 대통령의 ‘최후의 보루’였던 새누리당의 친박계 의원들마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최종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퇴진을 권유한 바 있다. 아직도 무고함을 주장하는 박 대통령에게 친박은 배신이다. 박 대통령에게 절대적 신임을 받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에 이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도 모든 행위에는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는 식으로 언급하고 있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2차 청문회가 열린 7일에는 최순실 일가의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질의가 집중된 핵심 증인은 단연 김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김 전 실장은 의원들의 쏟아지는 의혹 제기에 거의 예외 없이 ‘모르쇠’와 부인으로 일관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 관저에서 머리 손질을 하느라 90분가량을 허비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는데도, 김 전 실장은 “저도 언론을 보고서 알았다. 당시에 미용하는 사람이 드나들었던 것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수많은 생명이 차디찬 바다로 가라앉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대통령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비서실장이 전혀 몰랐다고 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또 최순실의 측근 차은택 씨는 이날 청문회에서 문화부 장관과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을 추천했다고 했다. 최 씨가 온통 국정을 좌지우지한 ‘박근혜 최순실 공동정권’ 얘기까지 나오는데 이를 까맣게 몰랐다는 김 전 실장의 말을 어느 국민이 믿을 것인가. 김 전 실장은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사실상 진술을 거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날 청문회에 사유서 제출도 하지 않은 채 불출석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해 특위는 반드시 불러내야 한다. 작금의 최순실 사태에 대해 ‘내 탓이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박 대통령의 주변 세력 중에 한 명도 없다. ‘배신’의 무리가 이 나라를 다스려온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민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풀어줄 박 대통령 세력의 참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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