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_대구교대교수2014.jpg
▲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국정(國政)의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국회에서 의결되었습니다. 찬성표가 234표이니 여당에서도 꽤 많은 표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국민의 요구가 강했다는 말이겠습니다. 정파적 이해를 떠나서 준엄한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정치인들을 바라보며 일말의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무겁습니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대다수 국민은 허탈감과 무력감을 느낍니다. 헌재의 결정이 남아 있습니다만, 미우나 고우나 우리 대통령이었던 이가 불행하게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게 꼭 반길 일만은 아닐 겁니다.

이런 말씀이 탄핵소추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아실 겁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될만한 충분한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짧은 이 지면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죄는 큽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물론 국민의 기대와 여망을 깡그리 져버린 것입니다. 저는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실망감을 역력히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잘 될 것이다. 카리스마 중에서 가장 위력이 강한 것이 유전된 카리스마이고, 우리나라의 정치 실정에서는 박근혜의 카리스마적 정당성이 상당한 순기능을 발휘할 것이다”라고요. 막스 베버가 한 이야기를 그렇게 아전인수, 견강부회했던 것입니다. 그 말이 웃음거리가 되는 데에는 긴 시간이 요하지 않았습니다. 초기 인선에서부터 여지없이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떻게 하면 나와 내 가족의 인생이 더 행복해지겠는가”라는 것에만 평생 골몰해온 인사들만 골라 쓰고 있었습니다. 국민이 원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사지로(生死之路)에서 오직 나라의 안위만을 염려하고 “신(臣)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공복(公僕)을 원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요구를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이니까요.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정 하기도 어려울 만큼 청개구리 갈지자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의 탄핵 정국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위세와 특권을 누리며 갑질을 일삼던 자들이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해 그 죗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 대통령의 놀라운 본색(本色), 그리고 그 허깨비 대통령을 둘러싼 모리배들, 그들의 죗값을 논하는 일이 매스컴의 주 임무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흡인력이 있었던지, 온갖 드라마나 예능 프로들이 모두 손님을 잃고 마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저부터도 그랬습니다. 듣고 또 듣는 거였지만 도대체 물리지도 않았습니다. 아, 이렇게까지 나라가 시궁창에 떨어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심란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한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멉니다. 어지러운 마음들을 정리하고 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습니다.

오전부터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탄핵소추 과정을 TV를 통해 지켜보면서 저는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한 편을 봤습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라는 영화였습니다. 첫사랑, 모정, 운명, 그리움, 생명의 의미 등을 잘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영화입니다. 제 트라우마를 건드릴 것이 두려워 차일피일 10년 넘게 미루어 두었던 영화였습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두어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영화에서 만나 인생은 참 슬프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 인생은 본디 그렇게 슬퍼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 그런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다 함께 지금.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