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원이 단정하게 정리된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비텍 타우누스 호텔에서 막 내린 커피 한 잔을 들고 유럽의 스산한 초겨울 풍경에 취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병우 얘기다. 36계 중 최상책이라는 줄행랑을 놓아버린 그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찰이나 검찰보다 더 수색력이 뛰어나다는 네티즌 사이버수사대도 그의 행방을 추적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가 이미 멀리 도망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손무의 ‘손자병법’보다 앞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병법이 ‘삼십육계(三十六計)’다. ‘삼십육계’는 본래 ‘전쟁을 하는 데 쓰이는 36가지 계책’이다. 제1계 ‘만천과해(瞞天過海·하늘을 기만하고 바다를 건너간다)’, 제2계 ‘위위구조(圍魏救趙·강한 적은 분산시켜 쳐부순다)’부터 마지막 제36계 ‘주위상책(走爲上策·도망가는 것을 상책으로 삼는다)’까지 독특한 전략들을 정리해 뒀다. 그 가운데는 유명한 제31계 ‘미인계(美人計)’도 있다.

우리는 흔히 ‘36계 줄행랑’이란 말을 관용적으로 쓴다. 36번째 계책은 정확히 말하면 “삼십육계주위상책(三十六計走爲上策)”이다. ‘달아나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뜻이다. 당장의 싸움에서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내일을 기약한 채 작전상 후퇴한다는 것이다. ‘줄행랑’은 ‘줄’과 ‘행랑(行廊)’이 결합 된 어형으로 ‘대문간에 줄처럼 길게 이어져 있는 문간채’를 가리킨다. ‘줄행랑을 치다’가 ‘도망가다’의 의미를 띠자 그 구성 요소의 하나인 ‘줄행랑’까지 ‘도망’의 의미를 띠게 된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이 ‘최순실 사태’ 국정조사 특위의 청문회 증인 출석을 거부하고 줄행랑을 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공개수배에 나서는 등 한바탕 법석이었다. 정봉주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은 자신의 SNS에 “국정 망가뜨리고 도망 중인 우병우 현상수배 합니다”라며 현상금 펀딩 계좌까지 개설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상수배에 들어가자 13일, 우 전수석이 한 매체를 통해 19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번에도 사이버 수사대의 위력이 발휘된 것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별 기대가 되지 않는다. ‘모르쇠’로 일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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