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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주) 컬처팩토리 대표
“아름다운 장소는 결코 삶의 폭발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홀이 훌륭한 만남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점이 극장(劇場)의 신비이다.” 영국의 세계적인 연출가인 피터부룩 (Peter Brook)은 그의 저서 빈공간 (The Empty Space)에서 이렇게 말했다.

크고 웅장하고 세련된 대극장 공간보다 우리 일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와 있는 재래시장 같은 소극장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소극장은 대개 100석 정도의 적은 객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서울 대학로에만 100개 이상의 소극장이 밀집해 있으며 대구·경북에만 해도 20여 개를 상회하는 소극장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운영되고 있다.

연극은 무엇에 의지해서 생명력을 갖는가? 대본, 배우, 관객, 그리고 극장이다. 이 중에서 무대 공간인 극장은 극(劇)과 장(場)이 합쳐진 말이다.

극에 마당이 붙어 극장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 공간에서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관객은 일상의 탈출구로 환영과 환상을 맛보기 위해 입장한다.

극장은 공간이다. 공간은 텅 빈 장소이다. 이 공간은 작가와 배우, 관객에 의해 하나하나 채워지길 기다린다. 작가는 대본에서 언급하고 배우는 그의 움직임과 등장인물을 통해 채우고 관객은 일상에서 일탈하고자 자기의 내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자 공간으로 입장한다.

이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의미를 뛰어넘어 내면 공간도 함께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관객은 물리적인 공간에서 내적 공간으로 이동할 때 진정한 예술적 감흥을 느낀다.

소극장은 작은 집이다. 100명 정도의 사람이 입장하면 가득 차는 공간이다. 대극장의 웅장함도 샹들리에도 멋진 로비도 없다. 그러나 대극장에 비해 소극장은 ‘사람’이 더 커지는 곳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수많은 조명기, 천정, 바로 눈앞에 있는 배우들. 접촉하고픈 욕망이 가득 살아 있는 집이다. 관객은 좁고 불편한 공간에 웅크리고 밝은 빛이 들어오는 희망을 응시한다. 배우와 관객의 눈빛은 태초의 한 줄기 빛처럼 강렬하게 서로 부딪치며 마그마를 품고 있다. 그러며 동시에 그곳은 실험의 공간이며 소통과 교감의 공간이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닌 함께 호흡하고 벅차하고 땀 흘리고 배우는 관객에게 기대고 관객은 배우에게 기꺼이 기대고 말을 거는 배우의 동반자가 되어 준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아니라 동상동몽(同床同夢)의 꿈을 꾸고 있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서 옆 사람과 어깨를 비비며 함께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처럼 소극장은 공동운명체이다.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작은 우주이다. 소극장은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지만, 배우와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특히 지역의 소극장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연극의 90% 이상이 소비되고 신인 극작가, 배우, 작곡가의 등용문이 됨은 물론이고 기초예술과 실험의 산실이다.

오일장이 아니고 1일장이 되어 1년 365일 매일 장이 서고 열리고 북적거려야 한다. 살아있는 항구처럼, 365일 집어등이 빛나야 한다. 그래서 365일 꺼지지 않는 터키의 안탈랴에 있는 야나르타쉬(불타는 돌)처럼 예술의 원석으로 활활 타오르길 기대해 본다. 소극장은 살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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