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에 가까운 모친은 매년 이제 마지막 담그는 된장이라고 하면서 손수 된장을 담근다. 누나나 동생 등 여형제들은 각자 된장을 담가 먹기에, 모친이 담그는 된장은 나와 남동생 집에서만 먹을 양이면 충분하다. 마침 올해 된장을 담그는 날에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내가 거들게 되었지만, 그만 약간 잡음이 생기고 말았다. 힘을 쓰는 일이라서 장독대에 있는 단지를 닦고 된장독에서 된장 건지는 일을 내가 도맡아 하게 되었다. 된장 단지 속에서 꺼낸 된장을 장독대에 있는 단지에 담으려고 했더니, 마침 그에 알맞은 단지가 없었다. 그래서 노모의 확실한 지시 아래 부득이 조금 큰 단지에 된장을 담았다. 속으로는 이렇게 작은 양의 된장을 왜 이렇게 큰 단지에 넣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모친의 엄명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된장을 담근 지 두어 달 지난 이후에 갑자기 모친이 된장을 누군가 퍼갔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지만, 다른 자식에게까지 따지게 되자 문제가 심각해지고 말았다. 간장은 장남을 비롯한 아들에게만 공짜로 줄 수 있고, 딸들에게는 단돈 천 원이라도 돈을 받고 주어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모친은 가지고 계신다. 그래서 모친에게 강한 어필을 하면서 된장 담글 때 내가 보니까 워낙 단지가 커서 된장이 반밖에 차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된장 단지가 너무 크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씀드렸지만, 모친은 막무가내로 된장 양이 지나치게 적은 걸 보니, 누군가가 된장을 퍼갔다고 주장하셨다. 그래서 부득이 내가 퍼갔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지난해 된장에 올해 된장을 섞어서 먹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아무래도 부실한 자식이 못 미더운지 며느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확인까지 하셨다. 그러나 모친의 추궁에 여러 차례 장남이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시는 모친은 이를 믿지 못하고, 다른 자식들에게 된장을 가져가지 않았느냐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되자, 나로서는 혹시 모친이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기자명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16.12.19 17:30
- 지면게재일 2016년 12월 20일 화요일
- 지면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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