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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한 변호사
미국 영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는 우리나라에서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 영화를 본 후 아이스랜드로 직접 산행까지 떠난 친구도 있었고, 주인공이 보드를 타고 내려오는 산악 도로 풍경을 직접 사진으로 찍어 올린 친구도 있었다. 유료 중매 사이트에서 직장 동료를 발견한 주인공이 그녀에게 ‘윙크’(관심 있음을 나타내는 그 사이트 내에서의 쪽지 같은 것)를 보내려고 하지만 시스템은 그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회원의 프로필 중 ‘언급할 만한 경험치’ 부분이 공란인 사람은 누구에게도 윙크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라이프(Life)’지(誌)의 사진부 직원인 주인공 월터는 이후 불 속으로 뛰어들어 그녀의 애완견을 구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하고 그녀를 위해 동상을 만들어내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라이프지의 폐간호에 쓰일 사진의 필름을 구하기 위하여 그는 결국 상상에만 머물지 않고 그가 상상할 수도 없었을 어려울 모험들을 직접 감행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진실한 여자 친구를 얻게 되었고, 새로운 직장을 얻기 위하여 써야 하는 이력서를 “경험”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상상을 현실화한 그런 그를 동경하는 마음이 이 영화의 많은 마니아를 낳았다.

18대 대선 당시에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개입’을 한 것은 맞지만 ‘선거개입’을 한 것은 아니라고 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의 글에 등장한 지록위마(指鹿爲馬)는 2014년도 ‘올해의 고사성어’로 선정될 정도였다. 우리 국민은 이후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러웠던 혼용무도(昏庸無道)의 2015년을 견디며 살아왔고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되고만 2016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도대체 어떤 고사성어가 이를 정확히 묘사할 수 있을까? 다들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졌기에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당장 먹고 살 걱정’, 구복지루(口腹之累)가 올해의 고사성어로 뽑혔다고 한다.

속칭 ‘낙수(落水)효과’를 얻기 위하여 대기업부터 잘 살려 놓아야 한다거나 효율과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성과연봉제나 쉬운 해고제를 더 확대하여야 한다거나 외국 기업유치를 위하여 법인세 인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그들이 정당을 둘로 나누거나 정당의 이름이나 색깔을 바꾸더라도 우리는 다시 속아서는 안 된다. 그들이 혹시 다시 선거에 임박하여 말을 180도 바꾸더라도 우리는 불과 몇 달, 몇 년 전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하였는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수년간 그들이 말하고 추진하려고 하였던 것들이 바로 그들의 진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멋진 상상력으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수출 및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를 통한 경제성장과 서민 경제의 활성화 및 국민 복리의 증진은 더 이상 공존하기 어렵게 되었다. 대기업을 적절히 규제하고,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며, 기본소득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일은 수요를 창출하는 직접적인 효과를 낳을 것이고 이에 따라 출산율이 증가하는 등 내수시장은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소득 중심 성장을 이루고 경제주체들이 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공동선을 향해 각각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는 것이 바로 우리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기본적 인권과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희망에 가득 찬 나라에 살고 싶다. 월터의 상상은 월터의 용감한 모험에 따라 현실이 되었다. 우리의 이런 희망찬 상상이 현실이 될 때까지 우리 국민의 헌신(獻身)도 계속될 것이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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