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주)사계절출판사…아사나 권력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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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훈 지음, (주)사계절출판사.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를 통합한 최초의 유목제국 돌궐의 200년 역사를 기록한 책 ‘돌궐 유목제국사’이 주목을 받고 있다.

돌궐은 6세기 중엽 몽골 초원과 중가리아를 배경으로 세력화에 성공한 뒤 서쪽으로 진출해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하나로 통합한 거대 유목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서로 분열됐고, 이후 50년간 당조의 지배를 받다가 부흥하는 등 부침(浮沈)을 거듭했지만 200년 넘게 이어지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책은 고대 유목 국가의 원형인 흉노의 뒤를 이어 거대 유목제국을 세운 돌궐의 유산이 몽골 제국으로 이어지며 북아시아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의 전개에도 큰 영향을 미친 과정을 검토한다. 

돌궐의 지배 집단인 아사나(阿史那)를 중심으로 한 유목 군주권의 추이를 따라가며 정주 농경 국가와는 다른 유목 국가로서 돌궐이 가졌던 성격을 새롭게 규명한다. 또한 아사나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소멸을 중심축으로 건국 신화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 개별 유목 국가의 역사 전개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 동시대 동아시아의 역사에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돌궐사의 위상과 의미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분석한다. 

무엇보다 한문 자료와 고대 투르크 비문 자료의 비교 연구를 통해 그동안 사료의 제한으로 주제의 편향이 심했던 돌궐사를 좀 더 ‘중립적’으로, 즉 중국도 돌궐도 아닌 ‘제삼자적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했다.

이 책에서는 신화시대부터 200여 년에 걸쳐 발전과 쇠퇴를 거듭한 돌궐 유목제국사의 전개 과정을 중국사나 일본사와는 다른 역동성을 지닌 초원 유목민의 역사로서 소개하고 있다. 이는 동쪽 끝의 만주에서 서쪽으로 몽골, 중가리아, 카자흐스탄, 그리고 남러시아까지 거대한 띠를 두르듯 드넓게 분포한 초원을 무대로 펼쳐진 유목민의 역사를 다각도로 조명해 북아시아가 어떻게 하나의 역사 단위가 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전제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초원과 오아시스의 결합을 기반으로 등장한 많은 유목 국가들은 세계사를 뒤흔들 만큼의 엄청난 영향력으로 전근대 시기 정주 농경 세계와 함께 인류 역사를 이끌어가는 수레의 두 바퀴라고 평가됐다. 

돌궐은 유목 사회를 기초로 정주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 않고 공납(貢納)을 징수하거나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획득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하는 ‘고대 유목 국가’의 하나였다. 이는 ‘정복 왕조’로 불리는 거란, 여진, 몽골, 만주 등과는 다른 양상을 띤 돌궐 나름의 특징이다. 

그런데 돌궐은 흉노처럼 정주 지역을 직접 지배하지는 않았지만 그 범위가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통합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교역권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이에 착안해 돌궐을 ‘고대 유목제국’이라고 규정하고 그 실체를 설명하려는 실증적인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역시 돌궐사의 전개 과정에 맞춘 계기적 설명보다는 일반적인 특성을 추출하는 정도의 접근에 그쳐 돌궐만의 특성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기록 내용이 풍부해 체계적인 검토가 가능하고, 복잡한 돌궐사의 전개를 일관되게 정리해 그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인 ‘유목 군주권’에 주목했다. 고대 유목 국가의 성격을 설명하는 데 유목 군주권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이유는 정주 농경 국가의 군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양상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념적·경제적 토대, 관료제나 법률과 같은 고도의 질서 체계, 역사 기술을 통한 정통성 계승 등 모든 면에서 취약했던 유목 국가의 군주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급자족이 어려운 유목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체제를 운영하기 위해 정주 지역 출신의 관료 집단과 결합한 ‘권위주의적 상인 관료 체제’, 정주 지역에서 획득한 물자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확보한 안정된 유통망을 통해 다른 문명권으로 유통시키는 ‘중상주의적 교역 국가’를 지향해야 했다. 

이런 지향을 가진 유목 군주에게는 무엇보다 정주 문명권, 특히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했고 실제로 돌궐의 성립과 발전, 붕괴에는 이 관계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는 ‘유목 군주권’, 구체적으로 돌궐의 지배 집단인 ‘아사나’의 권력 추이에 초점을 맞춰 돌궐의 고대 유목 국가로서의 성격을 새롭게 규명하고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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