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용무도(昏庸無道). 지난해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였다. 지난해가 2015년을 의미했지만 이 사자성어는 2016년을 예견이나 한 것처럼 딱 맞아떨어진 것이었다.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로 인해 세상이 어지러워져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못한다’는 뜻이 2016년을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범죄피의자가 되고 형사재판과 동시에 국회가 탄핵하고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교수들이 올해 초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인 ‘곶 됴코 여름 하나니’를 희망의 말로 선정했다.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하다’는 뜻이다. 누구나 일하고 그 결실이 골고루 배분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풍요로운 사회를 희망하는 뜻이 담겼다. 하지만 교수들의 희망이자 국민의 여망이었던 ‘꽃과 열매’는 거둘 수 없었다. 경제는 추락하고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무능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헌정질서가 무너졌다.

교수들이 올해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이 전국의 교수 611명을 상대로 이달 20일부터 22일까지 이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올 한해를 규정할 사자성어로 ‘君舟民水’가 뽑았다고 24일 밝혔다. 군주민수는 ‘순자’(荀子)의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군자주야 서인자수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수즉재주 수즉복주(水則載舟 水則覆舟). 군이차사위 즉위장언이부지의(君以此思危 則危將焉而不至矣)’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이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며 촛불을 밝혀 들고, 결국 박 대통령 탄핵안까지 가결된 상황을 빗댄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 번도 긍정적인 뜻의 사자성어가 뽑힌 적이 없다. 출범 첫해인 2013년에는 ‘잘못된 길을 고집하거나 시대착오적으로 나쁜 일을 꾀하는 것’을 비유하는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년에는 ‘의도적으로 옳고 그름을 바꾸어 놓는다’는 의미의 지록위마(指鹿爲馬), 그리고 2015년은 ‘혼용무도’였다.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2위는 176명(28.8%)의 교수들이 꼽은 ‘역천자망(逆天者亡)’, 3위는 113명(18.5%)이 꼽은 ‘노적성해(露積成海)’였다. 각각 ‘천리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 ‘작은 이슬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그 의미는 모두 촛불민심이다. 혼용무도의 병신년은 가고 내년 정유년엔 부디 ‘꽃 좋고 열매 튼실하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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