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현종이 하루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봤다. 얼굴이 몹시 수척해져 마음이 울적했다. 곁에 있던 신하가 말했다. “한휴가 재상이 된 뒤로 매사에 폐하와 반목해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니 마음이 울적한 것입니다. 차라리 한휴를 파면하고 소숭을 재상으로 삼으십시오”

현종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짐은 여위었어도 천하가 살찌지 않았는가. 소숭이 재상이 되면 오로지 순종만 할 줄 알지 자기 의견 한번 내놓지 못할 것이다. 그 때문에 그가 돌아간 후에도 짐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잠을 못 이룰 것이다. 그렇지만 한휴는 항상 짐과는 논쟁을 벌이지만 그가 돌아간 후에는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잠자리도 평온해졌어. 짐이 한휴를 등용한 것은 나라를 위해서지 짐의 일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처럼 현종은 등극 후 치세에 온 힘을 쏟아 당 왕조를 부흥시켜 ‘개원성세(開元盛世)’를 이룩한 현명한 군주였다. 만년에 접어들면서 양귀비에 빠져 양국충, 안록산 등 무뢰배들에게 대권을 헌납, 국정을 맡겨 나라를 멸망의 길로 몰아넣었다. 집권 초기에는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면서 진력을 다해 나라를 다스렸으나 후반에 가선 사치와 방탕에 탐닉, 영명한 성군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가 결국엔 우매한 군주로 전락,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자신이 그토록 공들여 이룩한 대업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망친 비극적 군주였다.

아버지 현종을 제치고 황제가 된 아들 숙종은 현종을 별궁에 연금했다. 노쇠한 현종은 외로움과 처량함, 그리움 등 만감이 교차, 7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현종의 총애를 업고 태평성세의 나라를 망국으로 몰아넣은 양국충과 안록산은 하류 인간들이었다. 양국충은 원래 일자무식 술주정뱅이에 노름꾼이었다. 반역의 난까지 일으킨 안록산은 지방관리가 된 후 공공재물을 황령, 사형 직전 간신히 목숨을 구한 전과자였다.

“국가의 번영과 흥성은 군주 단 한 사람의 성격에 달렸다” 볼테르의 명언이다. 당 현종의 자멸은 호화 방탕한 성격 탓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도 그의 외골수 성격이 공범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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