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우리 사회의 대표적 지성인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君舟民水(군주민수)’를 선정했다. 군주민수는 ‘순자(荀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는 헌법 유린·국정농단 사건으로 타오른 촛불민심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올해의 사자성어로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일상의 도리에 벗어난 일을 하거나 억지로 함),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휘두름),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길이 없어 보임)가 선정됐다. 모두 작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하듯이 현 정권의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을 경고했지만 결국 ‘군주민수’라는 참담한 국가적 불행과 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필자는 지난 주말 세계사에 전례가 없는 촛불 시민혁명의 성지가 되고 있는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국회의 탄핵의결과 성탄절 전야로 인해 촛불 규모가 다소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아홉 번째 촛불집회가 열리는 역사의 현장은 혹독한 추위에도 아량 곳 없이 수십만 시민들의 함성과 결의로 후끈 달아올랐다.

도대체 이러한 지속적인 촛불의 동력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보수들의 광장참여가 촛불의 힘을 지탱하는 한 축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작금의 사태는 현 정권 탄생에 일조했던 수많은 보수들에게 더 큰 실망감과 배신감, 분노와 자괴감을 주고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국기 문란 주범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때 국정을 쥐락펴락했던 인사들은 국회 청문회 등에서 작심한 듯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반성은커녕 모두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팽개치고 검찰수사를 거부하고, 헌법재판소에는 ‘탄핵 이유가 없다’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정말 이건 아니다’라는 탄식이 절로 난다.

여기에 대의기관이라는 친박 새누리당의 모습은 한마디로 후안무치를 보여준다. 촛불민심의 외침은 외면한 채, 대통령을 비롯한 국기 문란 세력들을 비호하기에 바쁘다.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연장에만 골몰하고 있다. 심지어 비박계의 탄핵의결을 패륜으로 매도하고 있다. 흡사 봉건왕조시대에나 있을 법한 붕당 정치세력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총선참패에 이어 또다시 친박을 지도부로 세웠다. 보수의 적통임을 자처하는 이들에게서 책임정치는 기대하기 어렵다. 친박 새누리당은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훼손하고 거덜 냈다.

마침내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계 의원들이 27일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진정한 보수의 구심점이 되겠다’며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분당선언문에서 “개혁보수신당은 대한민국의 진짜 보수세력을 모아 보수의 적통을 이어가며, 대한민국에 변화와 희망의 싹을 틔우겠다”며 “따뜻한 공동체를 실현할 진정한 보수정당의 새로운 집을 짓겠다”고 강조한 뒤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하겠다”고 밝혔다.

가짜 보수 새누리당에 절망한 수많은 보수들이 진짜 보수를 대변하는 신당의 출현을 기다려왔다. 최근에 발표된 일련의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새로운 보수신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예상을 뛰어넘는 기대이 상이다. 개혁보수신당이 또 하나의 보수정당 탄생이 아닌 뼈를 깎는 보수혁신을 통해 진정한 보수재건의 구심점이 되고, 진짜 보수의 희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보수가 오늘의 이 황당한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정말 미련한 보수로 낙인될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