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들은 한국의 경우 ‘문화지체’에 ‘역사지체’까지 겹쳤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압축적 성장’을 하는 동안 정권이 특정 부문은 억누르고 특정 부문은 키웠기 때문에 ‘문화지체’가 훨씬 더 증폭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언론인 장 피엘은 2000년 4월에 낸 책에서 “지금 한국에서는 고대와 현대가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라고 했다.
또 한국에서 15년간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한국인의 장점을 소개한 ‘한국인을 말한다’를 써서 유명한 영국 더 타임스 기자 마이클 브린은 최근 촛불집회와 대통령 국회 탄핵 상황을 한마디로 “한국 민주주의는 법(法)이 아닌 야수가 된 인민이 지배한다”고 했다. 그는 “인민의 힘(people power)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대중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해 정책 결정 과정이나 확립된 법치를 붕괴시킨다. 한국인들은 이를 ‘민심(public sentiment)’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집단적인 정신이며, 초월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한국인들의 ‘민심’은 법보다 위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지체이론으로 보면 지금 우리의 현실을 ‘정치지체현상’이라 명명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하다. 세계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 그것도 분단된 반도국가가 무역규모 1조 달러, 경제규모 세계 11위라는 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후진적 정치시스템 때문이다. 최순실게이트가 촛불 민심이 아닌 법치가 확립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