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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복 경북산악연맹 회장
참으로 어려운 한 해가 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뒤돌아보는 마음이 개운치 않지만 다가오는 새해를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아 보는 것이 늘 그래 왔듯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소시민의 심정 아닐까.

참담하고 암울한 세상살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날을 위해 ‘물러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필자가 속해있는 경북산악연맹에서 무려 12년 인고의 세월을 보내며 절치부심했던 세계 2위 K2 봉(8,611m) 등정을 위한 원정대가 지난 6월 장도에 올랐지만 등반 도중 C-3(캠프3)의 대규모 눈사태로 원정을 포기한 채 한 달여 만에 귀국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04년 처음 도전해 3명의 대원을 희생한 뼈아픈 일이었지만 자연의 거부에는 어찌할 수가 없다.

고산등반에는 비일비재한 일로 엄청난 훈련과 비용을 들인 원정대로서는 통곡하고 싶은 안타까움이다.

그렇지만 우리 산악인들은 물러설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임을 배워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대원들의 명운이 달린 중대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무릇 등반에서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이치가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도 이 평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일들이 안타깝고 답답하다.



진주 출신 이형기 시인의 ‘낙화’라는 시(詩)가 생각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중략)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결별의 순간을 절절히 노래한 시어(詩語)가 작금의 우리 사회에 시사(示唆)하는 바가 큰 것 같아 인용해 본다.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아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국가나 사회가 투명해지고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짚으며 그러지 못한 이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에 마음이 아프다.

누구 하나 나서서 이 어려운 형국을 풀어갈 생각들은 않고 아귀다툼에 빠진 듯 백성들이 기댈 언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라 경제나 안보가 백척간두의 위기를 맞고 있어도 분연히 일어나 구국의 기치를 높이 쳐드는 모습도 볼 수 없으며 지역경제가 밑바닥에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지역경제의 중추인 글로벌 기업 포스코도 철강경기 탓에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

곧 있을 경영진 개편에 신경이 쏠린 듯 지역과의 공생에는 무기력하기만 한 것 같다. 권력 지향적 기업이라는 오명에 몸 사리는 대기업들이 넋을 놓고 있으니 국가 경제나 지방경제가 돌아가질 않는다.

세상은 하루가 무섭게 변하고 있는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를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자신의 본분에 맞는 냉철한 판단으로 세상 돌아가는 판을 읽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이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아는 ‘물러설 줄 아는 용기’야 말로 진정 아름다운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정상을 오르지 못해도 자신과 모두를 위해 물러서야 한다면 기꺼이 내려올 줄 아는 산 꾼들의 그것처럼 새해에는 평정심을 찾아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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