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아래로 잠깐 내려와 주시소” 지난 23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구사랑의열매 직원들이 올해도 기다리던 키다리 아저씨. 전화를 받은 직원은 급히 사무실 아래층으로 내려가 키다리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차에서 직원과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후 확인해보라는 말과 함께 봉투 한 장을 건넸다. 봉투 안에는 신문 광고 전단지 뒷면에 쓴 ‘정부가 못 찾아가는 소외된 이웃을 도와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1억2천여만 원의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다.

감사의 뜻을 전하는 직원에게 키다리 아저씨는 “메모에 쓰여 있는 내용처럼 소외된 이웃을 잘 지원해 달라”는 말을 남긴 뒤 홀연히 사라졌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 1월 모금회를 찾아 익명으로 1억 원을 전달하며 나눔을 시작했다. 2012년 1억2천300여만 원, 2013년 1억2천400여만 원, 2014년 1억2천500만 원, 지난해 1억2천여만 원을 전해왔다. 2012년부터 5년 동안 6회에 걸쳐 기탁한 성금이 모두 7억2천여만 원으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대 누적 개인 기부액 중 가장 많은 액수다. 60대로 추정 되는 키다리 아저씨는 인적사항에 대해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단지 170~175㎝의 중년 남성인 것으로만 알려졌다.

대구에서는 지난 9일에도 3대(代)에 걸친 9명의 가족이 한마음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 했다. 각각 1억 원씩 기부한 이들 가족은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오랜 고민 끝에 가입을 결심했다. 성금은 대구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잘 써달라”고 당부했다.

대구 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얼굴 없는 천사’들의 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28일 전북 전주에서도 지난 2000년부터 17년 동안 약 5억 원을 기부한 완산구 노송동의 기부천사가 주민센터 인근 나무 아래에 지폐와 동전 등 5천21만7천940원을 놓고 같다. 올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치·사회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얼어붙고 있다. 겨울 수은주 만큼이나 기부 분위기가 움츠러든 상황이라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이들의 선행이 더욱 빛나 보인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