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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의 고전시담]김부식(金富軾) 결기궁(結綺宮)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록일 2017년01월01일 17시48분  

堯階三尺卑 (요계삼척비·요임금의 섬돌은 석 자밖에 안 되었지만))
千載餘其德 (천재여기덕·오랜 세월 그 덕이 남아 있네)
秦城萬里長 (진성만리장·진나라의 성은 만 리나 되었지만)
二世失其國 (이세실기국·겨우 아들 때에 그 나라를 잃었네)
古今靑史中 (고금청사중·고금의 역사 속에서)
可以爲觀式 (가이위관식·거울로 삼을 수 있으니)
隋皇何不思 (수황하부사·수나라 양제는 어찌 생각도 없이)
土石竭人力 (토목갈인력·토목 공사로 백성의 힘을 말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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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이 시는 김부식의 역사관과 사상을 잘 보여 준다. 진나라와 수나라 황제의 행적을 통하여 임금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만리장성 축조로 나라가 망하고 대운하 건설로 민생이 피폐해졌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어, 이해를 위해 피일휴(皮日休)의 시 ‘하회고기이(河懷古其二)’중 한 편을 소개한다. 盡道隋亡爲此河 (수나라는 이 운하 때문에 망했다고 모두 말하지만) 至今千里賴通波 (지금은 천 리가 운하로 통하네) 若無水殿龍舟事 (수양제에게 호화로운 뱃놀이만 없었던들) 共禹論功不較多 (우임금과 공을 다투어도 뒤지지 않을 텐데)

김부식과 정지상은 진정 라이벌이었을까. 정지상이 시에, 김부식이 산문에 더 밝았다는 것을 빼면 사실상 둘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약자이자 일방적으로 당한 정지상을 동정하여 글쟁이들이 만들어 낸 저주 아닌 저주가 아닌지.


뇌천(雷川)김부식은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22세에 과거에 합격한 뒤 안서대도호부의 사록을 시작으로 직한림, 추밀원사, 중서시랑평장사 등 고위직을 두루 거쳤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최고의 문장가로 입신양명하길 바라는 뜻에서 중국 소동파 형제의 이름자를 따 그의 형제의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4형제가 모두 과거에 합격해 그의 어머니가 왕으로부터 크게 상을 받았다고 한다. 김부식은 아버지의 뜻대로 학문에 깊이 천착하였고 특히 42세 때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돌아올 때 송나라 휘종으로부터 ‘자치통감(資治通鑑)’ 한 질을 선물로 받아왔는데, 이것이 ‘삼국사기’를 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단재 신채호가 ‘조선 일천 년 역사상 제일 대사건’이라고 칭한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원수(元帥)가 되어 진압에 나섰으며, 서경으로 가기 전 개경에 있던 동조 세력인 정지상 등을 먼저 죽였다. 서경파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고려사’에서 “정지상의 문장 실력을 시기하여 먼저 죽였다”라고 기술한 이래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져 두고두고 그를 폄하하게 했다.


김부식은 난을 진압한 후 벼슬이 더 크게 올랐으며 “박학강식(博學强識)해 글을 잘 짓고 고금(古今)을 잘 알아 학사들의 신복을 받으니 그보다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려도경’)라는 평을 받았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였으며 만년에는 불교 수행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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