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영광 천년의 망각 묵묵히 지켜낸 무언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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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괘릉을 수호하고 있는 심목고비 서역인 모습을 한 무인석상.

실크로드는 지중해 문화권과 이란고원의 정신적 지주인 조로아스터교,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문화가 서로 만나 교류를 하면서 문화의 발전을 가져다준 동서양의 거대한 연결고리 역할을 담당해 왔다. 즉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의 역사무대로 만든 문명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고대 이래로 동아시아에 국한된 성질의 것이 아니었으며 지중해 세계를 포함한 유라시아의 여러 문화권과 직간접적인 문화교류 때문에 다양한 문화속성을 지니게 됐다.

경주지역에 산재 돼 있는 문화재에는 고대 유라시아 세계를 관통하는 남시베리아의 스텝(초원) 루트를 비롯해 중앙아시아 사막지대의 오아시스 루트를 통해 전래한 무수한 외래문화 그리고 장보고 등의 활약 때문에 초래된 남아시아의 해양 세계문화의 흔적이 뚜렷하게 그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이들 문물에는 당시 신라인들의 세련된 미적 감각과 종교관 등이 유감없이 반영돼 있다, 중국을 통해 받아들인 불교문화를 다양한 문양이나 조각 등을 통해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고 국가진로의 가르침이나 극락정토에서의 화생을 기원하는 신라불교의 특유한 성격이 농후하게 배어 있다.

혜초와 같은 입축구법승의 활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보다 인도 지향적인 경향이 강했으며 그 결과 경주지역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각종 문물에는 동서문화 교류의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경주 시내의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에서 지중해 및 서아시아 세계와의 문화교류현상을 살펴보고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실크로드가 기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전개된 문화교류의 현상을 민병훈 전 중앙박물관 아시아 부장이 집필한 ‘실크로드와 경주’를 참고해 △서역인 무인석상(헤라클레스 도상), △금관의 새와 태양 장식 △황금유물의 보석 끼워 넣기 장식 △팔찌의 동물장식과 결절 문양 △황금 대접과 황금잔 △금제 신발 바닥과 금동식리 △토르크와 각배 △단검과 칼집 등 주제별로 나눠 소개한다.

 또 실크로드를 통한 유라시아 문화교류의 보편적 흐름 위에서 경주의 문물을 고찰해 경주의 문물이 왜 고유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지니게 됐는지를 살펴본다.

  △서역인 무인석상(헤라클레스 도상)

 경주 괘릉과 흥덕왕릉,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심목고비(深目高鼻)의 서역인 모습을 한 무인석상이 왕릉을 호위하고 있다.

 신라 제38대 원성왕 능으로 추정되는 괘릉 무인석상은 마치 헤라클레스상처럼 곤봉을 잡고 주먹을 불끈 쥔 역동적인 자세로 성역에의 침범을 용납지 않으려는 수호신으로서의 위협적인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다. 턱수염이나 두 팔 근육의 사실적 묘사, 가슴을 약간 틀고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내려다보는 모습, 옷 주름 및 무기의 구체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균형 잡힌 비례감과 정교하고 생동감 있는 묘사는 불상의 제외한 당시의 인물 조각상으로는 대표적인 것이라 할만하다.

  무인석상은 동여맨 이마 띠를 비롯해 수염을 기른 심목고비한 소그드인의 풍모를 느끼게 하고 흥덕왕릉 무인석상은 머리띠나 복식 상의 섬세한 표현, 허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와 칼 등의 묘사는 괘릉의 무인석상을 능가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인 비례의 불균형이나 생동감이 결여돼 있다.

 이 무인석상의 유래에 대해 학계의 주장이 많은 가운데 민병훈 전 중앙박물관 아시아 부장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 도상이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에 따라 실크로드를 거쳐 전파돼 지역 고유의 문화와 만나면서 변용된 것이라는 주장을 해 주목을 받았다.

 아폴로도로스의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미케네의 왕은 부하 헤라클레스에게 열두 가지의 과업을 부여했다. 

 그 첫 번째 과업은 네메아의 사자를 잡아오라는 것이었다. 네메아의 사자는 칼리 들어가지 않을 정도의 단단한 피부를 지녔기 때문에 헤라클레스는 이를 곤봉으로 때려잡아 목 졸라 죽인 다음 죽은 사자의 모피를 머리부터 뒤집어써 갑옷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 전래해 오는 헤라클레스상도 대개 사자의 모피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형상화된 것은 바로 이런 연유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에 의한 헬레니즘의 확산에 따라 수호신의 이미지를 지닌 헤라클레스 상징주의 역시 지중해 세계를 비롯해 서아시아와 인도, 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교에 수용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불교에 접목된 헤라클레스 도상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 석굴사원의 불교조각과 불화에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으며 석굴암 팔부중상(불법을 수호하는 여덟 명의 무사들)의 건달바상 등에서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헤라클레스 도상 가운데 사자를 제압하는 도구인 곤봉의 경우, 신라의 중대에서 하대로 이어지는 과도기에 원성왕릉과 헌덕왈릉, 흥덕왕릉을 지키는 심목고비의 무인석상에  잘 적용돼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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