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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우리밀 칼국수 정인식 대표

"높은데만 쳐다보지 말고 주위 어려운 사람부터 살펴야"

박용기 기자 ygpark@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1월01일 21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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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식 우리밀 칼국수 대표가 칼국수 반죽을 하고 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하는데, 제게는 그 눈물 젖은 빵조차 사치였습니다.”

구미시 인동에서 ‘남산골 우리 밀 100%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며 칼국수 무료 급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정인식(62) 씨는 흔히 고생한 사람을 뜻하는 ‘눈물 젖은 빵’조차 구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졸업 무렵 부모님의 잃은 정 씨는 그 슬픔과 혼자라는 외로움이 반항심으로 바뀌면서 그나마 끼니를 해결하던 희망원까지 사고를 쳐 들락날락하며 사회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

헌혈하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꾸깃꾸깃한 식권 한 장으로 10대 후반을 버텨왔다는 정 씨는 당시 상황을 “먹을 게 없어 피를 뽑아 먹고 살았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낮이 지나면 마구간 안, 기와 굽는 아궁이에 몰래 들어가 기나긴 밤을 버텼다.

지금도 정 씨는 “배고픔이 얼마나 서러운지 아느냐”며“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나설 때 드는 그 자괴감은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의 기억 때문인지 정 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칼국수를 드시는 지역의 어려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미안함과 부담 없이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30여 년 전 구미로 온 정 씨가 지역의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칼국수를 무료로 제공한 것은 4년 전.

당시 황상동에서 칼국수 집을 운영하던 정씨는 인근 복지관 어르신들을 모시고 무료식사 대접을 한 후 본격적으로 나눔을 시작했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고생만 하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께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눔의 대상도 폐지를 주워가며 홀로 어렵게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4년 동안 이들을 위해 칼국수 집 문을 활짝 열어놓은 정 씨는 이제 매일 보이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루라도 안 보이면 전화를 하고, 심지어 집으로 칼국수를 들고 찾아 안부를 확인할 정도로 동네 효자다.

하지만 생계가 아닌 소일거리로 폐지를 줍는 분들은 정중히 돌려보낸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정말 힘든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다”며“배고픔을 해결하지 못할 때 드는 그 비참한 기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의 선행은 SNS를 타고 퍼져 정 씨의 칼국수 집에는 나눔에 동참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이 보내온 물품들이 끊이지 않는다.

정 씨는 아예 칼국수 집을 손님의 자발적인 기부로 남에게 음식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방식의 미리내 가게로 등록했다.

정 씨 자신도 주위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던 아파트를 팔아 모자란 비용을 보태고 자신은 식당에서 생활하다 최근 한 달에 23만 원 하는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다.

“죽음이 다가와 어떻게 살았나 뒤를 돌아봤을 때 잘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는 정 씨는 “높은 데만 쳐다보지 말고, 멀리 후원하려고 하지 말고 주위에 어떤 어려운 사람이 있는지부터 살펴보자”며 “돈부터 좇다 보면 사람을 잃게 된다”고 충고했다.

이어 작은 목소리로 “청소년 선도에도 관심이 많다”며 부끄러운 듯 한 때 방황했던 자신의 경험을 같은 처지의 청소년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로또에 당첨돼 일주일에 4일 정도는 내 장사를 안 하고 무료 급식소를 해보고 싶고, 멀리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차를 사 이동식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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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 기자

    • 박용기 기자
  • 김천,구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