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모든 산맥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이육사 시 ‘광야’ 중에서)

이육사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에 미래에 올 해방된 나라를 그렸던 시인이다. 그의 대표시 ‘광야’는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리던 그 장엄한 순간을 상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으로 어수선한 정국과 추락하는 국가 경제를 살릴 희망찬 닭 울음소리가 간절하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은 저물고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정유년의 ‘정’(丁)은 붉은색을 뜻해 특별히 새해는 ‘붉은 닭’의 해다.

무속신화나 건국신화에서 닭 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 본풀이 서두에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개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라 김알지 신화에서는 호공이 밤에 월성을 지나가다가 나무에 황금 궤가 걸려있고 그 밑에서 흰 닭이 울었는데, 그 황금 궤 안에서 동자가 나왔는데 금궤에서 나왔다고 성을 김씨 라고 했다는 것이다.

닭은 띠를 이루는 열두 가지 동물 중에서 유일한 날짐승이다. 또한, 서민들의 삶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서 예로부터 다양한 형태로 민화나 책에 등장했다.

옛사람들은 닭을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여기기도 했고 ‘벽사 초복(사악한 것을 쫓아내고 복을 불러온다)을 하는 동물’이라며 그림으로 그려 정초에 대문이나 집안에 붙였다.

또 수탉의 붉은 ‘볏’은 ‘벼슬’과 발음이 같아 입신출세(立身出世)를 기원하는 그림에 등장했다.

특히 모양새가 비슷한 맨드라미와 닭을 함께 그리고 ‘관 위에 또 관을 더한다’는 뜻의 ‘관상가관’(冠上加冠)이라는 문구까지 넣어 입신출세의 강렬한 열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매일 알을 낳는 암탉은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중국 전한의 회남왕 유안이 저술한 책 ‘회남자’(淮南子)에는 ‘전세계 닭의 왕’으로 여겨진 상상 속의 닭인 ‘천계‘(天鷄)가 나온다.

회남자는 천계에 대해 ‘중국 동남쪽 큰 바다 속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신성한 산의 거대한 복숭아나무에 살면서 해가 뜰 때 소리 내어 울면 천하의 모든 닭이 따라 운다’고 전했다.

중국 당나라 시인인 이백은 ‘몽유천모음유별’이라는 시에서 ‘나는 사영운(謝靈運, 중국 동진 말의 시인)의 나막신을 신고 구름사다리에 올랐나니, 절벽 중턱에서 바다 해가 보이고, 하늘닭 소리 공중에서 들리더라’(脚着謝公履 身登靑雲梯 半壁見海日 空中聞天鷄)며 역시 신묘한 동물인 천계에 대해 쓰고 있다.

닭은 민속학적으로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이다. 방향으로는 서쪽을, 시간으로는 오후 5~7시를, 달로는 음력 8월을 뜻한다.

예로부터 닭은 어둠을 깨치고 새벽을 여는 신통력을 지닌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 선조들은 밤의 어둠속에서 활개를 치던 귀신들이 닭 울음소리로 일제히 사라진다고 믿었고, 지금도 닭의 울음소리를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곡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닭은 이미 삼국시대 역사서에 언급되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박혁거세와 김알지 신화가 대표적이다.

또 천마도가 출토돼 유명한 천마총에서는 수십개의 달걀이 들어 있는 단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구려 벽화고분인 무용총 천장에는 한 쌍의 닭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고려시대에는 새해를 앞두고 집안의 잡귀들을 몰아내는 의식에 닭을 사용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가까이에 두고 길러온 가축답게 닭에 관한 전설이 얽힌 지명도 많다.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지명으로는 경북 봉화군에 있는 ‘닭실마을’로, 마을 앞을 흐르는 맑은 내와 넓게 펼쳐진 들판이 ‘황금 닭이 알을 품은 모습’을 닮아 붙여졌다.

닭의 볏, 머리 등 주요 생김새와 모습을 닮은 지명도 많다.

독도의 동도 북서쪽에 있는 ‘닭바위’는 서도에서 바라봤을 때 닭이 알을 품는 모습처럼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2017년 정유년은 닭의 해다. 우리 조상은 닭을 상서로운 서조(瑞鳥)로 여겼다. 새벽을 여는 새로 여겼다.

여명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가 날 무렵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은 달구리다. 달구리는 ‘닭울이’가 변한 것이다. 한자로는 계명시(鷄鳴時)라고 한다.

새벽의 닭 울음소리를 계명청(鷄鳴聽)이라고 한다. 계명은 곧 개벽으로 환치된다. 새벽은 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 정국은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누군가는 작금의 사태를 “6·25전쟁 이후 최대의 혼란기”라고 말한다. 혼돈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들이 날뛰고 있던 것이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한 이들의 민낯을 보면서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작용과 반작용은 만물의 법칙 중 하나다.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 듣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아니 기다리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수백만 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국민이 더 안전하게 살고 권력 때문에 손해를 보거나 고통받지 않는 새로운 세상에 살고 싶어하는 열망의 표현이다.

어둠은 언젠가는 걷히게 돼 있다.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국민들은 정유년에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올해가 ‘붉은 닭’의 해이기 때문이다. 붉음은 밝음과 의미가 통한다. 그래서 ‘붉은 닭의 해’를 ‘밝은 닭의 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닭띠 해가 왔는데 ‘닭’은 슬프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는 닭과 오리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그 뒤론 검은색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섰다. ‘조류인플루엔자(AI) 생매장으로 희생된 2천만 생명을 위한 위령제’였다.

매년 이맘때면 새해를 상징하는 12십이지) 동물이 밝고 활기찬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는 출발이 다르다. 새 아침을 상징했을 ‘꼬끼오’ 울음소리는 2016년 세밑 대한민국의 울음 그 이상이 아니었다. 26일 현재 2천600만 마리가 넘는 가금류가 생매장됐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생매장을 당해야 할지 모르는 슬픈 운명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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