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명의신탁 법리는 그대로 승계돼, 당초 종중재산의 법률관계에 적용되는 예외적 법리가 일반적 법리로 확산됐다. 신탁자인 A가 수탁자인 B에게 명의신탁한 후에. C에게 처분하더라도 A는 양도소득세 등 어떤 세금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나아가 A가 토지를 매수하면서, B 명의로 유지하다가 C에게 처분한 경우에는 등기상 아예 A 본인 흔적이 없을 뿐 아니라 탈세까지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명의신탁 법리는 당초 법리를 잘 아는 일부 계층에서만 이용됐지만, 점차 일반 서민도 이용하게 됐고, 1970년대에는 부동산투기에도 이용됐다. 당초 종중재산의 소유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도입된 법리가 급기야 사회적 병리현상인 부동산투기에 이용되는 법리적 왜곡이 발생하였다. 문제는 A와 B 사이의 명의신탁관계는 은밀하게 이루어지면 제3자의 입장에서는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당사자의 배신이나 형사적 소추 등을 통해서 이러한 법리적 왜곡이 밝혀지자, 국세청은 명의신탁으로 증여로 의제하여 증여세를 부과하였지만, 대법원은 명의신탁을 증여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상속세법을 개정하여 증여의제규정을 만들었지만, 대법원은 이를 축소해석하였고, 헌법재판소까지도 조세포탈 목적이 없는 명의신탁에 대해서 증여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명의신탁이 부동산투기에 이용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물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형식적 법리해석을 함으로써 사회적 병리 현상을 퇴치하는데 일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방조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로서도 사회적 병리를 퇴치한다는 명분으로 조세법률주의나 재산권 보장과 같은 헌법상 원칙을 흔들리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정부는 1990년에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을 제정하여 명의신탁을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도록 하였지만, 대법원은 역시 이를 단속규정으로 보아 사법적 효력은 인정하였다. 결국, 1995년 부동산실명법을 제정하여 아예 명의신탁제도가 이용되는 것을 차단하도록 하였고, 대법원도 사법적 효력을 부정하여 소유명의자인 수탁자의 재산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법리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 부동산투기라는 일시적 사회적 병리 현상에 대해서는 세금부과나 형사적 처벌로 해결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원칙인 사적 자치의 원칙에 무너뜨려 가면서 일반화되어 있는 명의신탁의 사법적 효력까지 부인하는 것은 재산권 보장이라는 헌법상 이념을 붕괴시킬 수 있다. 예외가 원칙이 되고, 왜곡은 또 다른 왜곡을 낳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