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책을 읽는다, 당신들은
무기질 질료로부터 태어나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책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
옛 관리의 홀笏처럼 하나씩 들고 읽는다

거룩한 이론에서부터
가벼운 하소연까지
노랫가락에서 움직이는 그림까지
온갖 유희와 소문들이 화수분처럼 가득한 책
사고전서의 서적을 다 넣어도
오히려 자리가 남는 얇은 책
단 한 권의 책을 읽는다, 당신들은
어른에서부터 아이까지
수불석권手不釋卷, 한 시도 놓지 않는다

스스로 전혀 빛나지 않는,
그래서 읽는 이의 내면에서
빛을 낼 수밖에 없는,
이 어두운 책을 들고 지하철 속에 나는 흔들린다
창밖엔 모히칸족의 최후처럼 황혼이 진다




감상)이사를 할 때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불평이다 책 짐이 가장 싫단다 버리고 또 버려도 금방 쌓이는 책, 바깥에 쌓이는 게 많을수록 내 안은 비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책꽂이에 꽂힌 책 중 잘 읽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해본다 다시 읽고 싶은 책과 그렇지 않은 책도 구분해본다. 가지고 있다고 내 것이 되는 것도 버린다고 내 것이 안 되는 것도 아닌 책, 책에 대한 미련이 클수록 내 안이 많이 비었다는 걸 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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