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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술 오천고 교사
분노한 병신년이 가고 희망을 상징하는 붉은 닭의 해 정유년이다. 정(丁)은 적(赤) 즉 붉다는 의미와 맑다 총명하다는 뜻을 가진다. 유(酉)는 시간으로는 오후 5∼7시이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가진 글자로서 만물이 성숙하고 바뀌는 것을 의미하며 동물로는 달이다.

우리 조상들은 십이지(十二支) 중 유일한 조류인 닭을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존재로 영묘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닭은 60갑자 중 34번째로 어둠과 귀신의 시간 빛과 인간의 시간을 닭의 울음소리로 나누었다. ‘장자’에서는 닭이 밤을 새우는 것 즉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을 시야(時夜)라고 하며 시야는 닭을 뜻하기도 한다.

국토지리원이 조사한 닭과 연관된 지명 293곳 가운데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영남의 4대 길지로 꼽은 봉화 닭실마을이 으뜸이다. 마을 뒷산은 암 닭이 알을 품고 마을 앞 흐르는 내를 두르고 있는 앞산은 수탉이 날개를 펼쳐 알을 지키는 형상으로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지명이다. 독도의 동도 북서쪽에 있는 닭 바위는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사에도 닭에 관한 기록들이 있다. 기원전 이집트인들은 도자기에 닭의 그림을 그렸으며,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닭이 나태의 악마인 부시아스타를 물리친다고 믿었다. 아프리카 요루바족은 신의 계시로 닭의 발톱이 깊숙이 파고 들어간 지역에 계곡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 산과 언덕이 생겼다고 믿었다.

‘삼국유사’ 김알지와 박혁거세 신화에서 닭은 한 국가의 시조 탄생을 알려주는 예언자와 같은 존재였다. 고구려 고분 벽화 무용총 천장에는 한 쌍의 닭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수십 개의 달걀이 들어있었던 단지와 닭 뼈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닭 그림이 정월 초하루 세화로 사용하여 잡귀를 쫒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 문인 하달홍은 축계설에서 닭은 머리에 관을 섰으니 문(文), 발톱으로 공격하니 무(武), 적을 보면 싸우니 용(勇).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 때를 맞춰 우니 신(信) 이라고 하여 5가지 덕(德)을 갖춘 동물로 5천 년간 인류와 함께하고 있다.

정유년의 역사적 사실로 고려 무신집권기 망이망소이의 난(1177)과 임진왜란 기간 중 왜군의 두 번째 침략인 정유재란(1597)이 역사교과서에 서술되어 있다. 1777년에는 당파싸움으로 아버지를 잃은 정조가 암살 위험에 처하기도 하였으며 120년 뒤 1897년 정유년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와 대한제국을 선포한 해이기도 하다.

정유년 새해 소중한 사람들 모두 장엄한 희망의 붉은 해를 가슴에 품고 좋은 일을 예고하는 닭울음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이른 봄 힘겨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에서 돋아나는 새순처럼 지난날 아쉬움은 잔뿌리로 남겨두고 새해 새날을 맑게 시작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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