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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물] 19. 구미시 장천면

3개의 산성 우뚝…분쟁 잦았던 국경지대의 주민 보호 요새 처

박용기 기자 ygpark@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1월03일 20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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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의 최동단에 있는 구미시 장천면은 총면적 58.17㎢로 면 지역으로는 무을면에 이어 두 번째로 작다.


대구와 상주를 잇는 25번 국도와 중앙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67년 전통의 오상 교육 재단이 있어 탄탄한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고추, 한우, 수박 등의 농ㆍ특산물이 유명하다.

조선 시대 초 남웅곡방, 북웅곡방으로 군위군 효령현에 속했다가 북웅곡방으로 선산군에 속했으며, 1914년 선산군 장천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됐다.

이후 1987년 석우리가 칠곡군 가산면에 편입됐으며, 1989년에는 거꾸로 칠곡군 가산면 신장리가 장천면에 편입됐다.

1995년 구미시, 선산군 통합으로 구미시 장천면이 됐다.

장천면 전경

▲장천면의 기운

동쪽으로 가산(架山, 568m)과 응봉산(鷹峰山, 331m)이 솟아 있고, 이어지는 능선은 한천(漢川)과 사창천(社倉川)의 분수계를 이룬다. 장천면은 한천 상류부의 좁은 골짜기가 많은 준 산간 지대로서 대부분이 3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이다.

동부 산지에서 발원한 명곡천 등의 소하천이 서쪽으로 흘러 하장리 일대에서 합류하며, 이들 하천 연안에 경지가 분포한다. 면계에는 적라산(352m), 천생산(407m) 등이 솟아 있다.

이 중 천생산은 금오산과 함께 구미를 대표하는 산으로 임진왜란의 사적지인 천생산성이 있는 곳이다.

천생산성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처음 쌓고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가 왜적을 맞아 싸웠다고 전해오는 유서 깊은 곳으로 천연적으로 형성된 험준한 암벽 사이를 자연 활석으로 이은 우리 특유의 산성축조방식으로 쌓았다.

둘레가 약 1㎞이고 성안에 우물 하나와 연못 2개가 있었다. 이웃한 금오산성, 가산산성과 더불어 인근 주민을 난리로부터 보호하고 적정을 탐지하는 요새 처였다. 임진왜란으로 이 성의 중요성이 새로이 인식되면서 선조 29년(1596) 현감 이현보가 고쳤고 선조 34년(1601)에 관찰사 이시발이, 선조 37년(1604)에 찰리사 곽재우가 수축했다. 성안에는 군창, 군기고를 비롯하여 만지암이란 사찰이 있었다.

▲장천면이 배출한 인물

오상 교육재단 설립자인 매암 김동석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1958년 제4대 민의원 의원에 당선되기도 한 김동석 선생은 허주 김윤환, 김태환 전 국회의원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1979년 제10대 국회에 유정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 허주 김윤환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경북고등학교 동창생이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 원내 총무 및 사무총장으로 당시 민정계 국회의원들을 설득, 김영삼 대세론을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어 1997년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하자, 비영남 후보론을 내세워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시켰고, 같은 해 10월 제16대 대통령 선거 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에 임명됐다.

한국 정치사의 대표적인 킹메이커로 꼽히며, 2003년 신장암으로 인한 건강 악화로 사망했다.

그의 동생 김태환 전 국회의원은 2008년 고향(구미 을)에서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8대, 19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됐으며, 새누리당 중앙위원원회 의장, 국회 안전행정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구미 갑 국회의원이자 국방부 차관을 지낸 백승주 의원 고향 역시 장천면이다.

이 밖에도 김만제 전 경제기획원 장관,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 권택상 마포구청 부구청장, 이윤도 한국해양연구소 감사, 이규건 전 감사원 감사관이 고향 장천면의 기운을 업고 중앙으로 진출했다.

교육계에는 박태암 전 대구교대 총장, 문효근 연세대 명예교수, 곽태조 전 김천시 교육장 등이, 사업가로는 우진용 전 우진교통 사장, 김학권 전) 풍국건설 부사장, 유세인 전 국보운수 사장, 우성기 아세아택시 사장 등이 있다.

▲장천면 역사

마을이 형성된 역사가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마을 앞을 흐르는 내(川)의 길이가 길다 하여 장천(長川)이라 하고 위를 ‘상장(上場)’, 아래를 ‘하장(下場)’이라고 했다.

주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이 밖에 고추·마늘·참외·수박 등 특용작물 재배가 성하며 한우 사육도 활발하다.

특히 30년 전부터 재배해 온 청양 풋고추는 친환경 농법으로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고, 점질 토양에서 재배한 수박은 다른 지역 수박보다 당도가 월등히 높다. 한우는 270여 농가에서 1천700두가량 사육하고 있는데, 맑은 물과 신선한 초지 공급으로 육질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장천면은 신라 초기에 상주와 더불어 국경 지대에 있어 백제와 분쟁이 잦았던 곳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선산에서 장천을 거쳐 인동·군위·안동에 이르는 도로가 발달하였고 임상역(林上驛)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출신인 황사충, 김윤부 등이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매복하였다가 왜적 10여 명을 죽인 곳이기도 하다.

올해 11회째를 맞은 장천면 코스모스 축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구미의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천면 코스모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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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기 기자

    • 박용기 기자
  • 김천,구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