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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40여 년 전 최태민이 영애(令愛) 박근혜를 앞세워 재벌들로부터 대대적인 수금(收金)을 하던 일들이 보도되었는데 국가기록원으로부터 JTBC가 입수하여 방영한 영상 속, 그 당시 영애에게 불려 와 영애와 악수를 하던 사람들의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얼마 전 참고인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이어서 국회 청문회까지 출석한 재벌 총수들의 선친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5공 청산을 위한 일해재단 관련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1948년으로 보느냐, 1919년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결코 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친일파들만이 1948년 이전의 역사를 ‘과거’의 역사로 치부하려고 한다. 교육부의 국정교과서에서 굳이 ‘1948년에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쓴 이유가 바로 그 이전의 역사를 ‘누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이전의 그들의 친일의 역사가 누락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수립에 공헌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해방을 위하여, ‘대한국민’의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대한민국’을 지켜왔던 분들이다. 친일파들은 그들의 안위를 위하여 빨갱이라는 적을 만들었고 우리 민족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 준 내전 이후로 그들은 빨갱이 척결을 최우선의 국가 과제로 삼았다. 이로써 전쟁 이전, 정부 수립 이전의 역사가 묻혔고, 그들의 반민족행위에 대한 단죄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승만은 민간인 학살과 국회탄압까지 서슴지 않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승만의 하야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고, 발췌개헌이나 사사오입개헌에 부역한 자들이 어떻게 처벌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5.16. 군사반란과 유신하의 강권통치에 협력한 자들, 광주학살을 비롯한 5공 군사정권에 협력한 자들이 아직도 권세를 누리고 있는 모습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왜 이런 치욕의 역사가 계속 반복되는가? 한 마디로, 부역자들에 대한 국가적인 단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세계 2차 대전 중 나치에 협력한 비시괴뢰정권 가담자들을 모두 처단하였다. 지금도 외국에 숨어 지내던 당시의 부역자들을 추적하여 하나하나 재판에 회부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나치정권 하에서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많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지금도 끝까지 찾아내서 단죄하고 있다. 주도적인 악행지휘자가 아니라 스스로 체제에 순응하여 자신의 행동이나 상관의 명령에 대하여 주체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악을 행한 자들까지 엄단하는 것이다. 이래야만 모든 구성원들에게 국가에 대한 ‘반역’이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신’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임을 강인시킬 수 있다. 이런 강력한 응징만으로도 국민들은 독립 운동가를 존경하고 스스로 자발적인 애국심을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치권에는 종양 몇 개만 제기하면 된다는 식으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세력, 우리는 저들과 다르다면서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 내리기를 이미 단행한 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참다운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품고 있는 우리 국민들은 이들 모두가 엄히 단죄되어야 할 자들임을 잘 알고 있다.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주인공 지은탁(김고은) 같은 “기타누락자”는 되도록 보통 사람의 수명이 될 때까지는 계속 누락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 역사에 100년 이상 쌓이고 쌓여 온 부역자 기타누락자들은 이번 기회에 일거에 사라져주었으면 좋겠다. 촛불 민심이 바라는 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출발이다. 부당한 권력에 부역하는 대가로 청산에서 계속 누락되는 혜택을 100년 가까이 누린 자들을 지금 말끔하게 정리하자.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대한민국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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