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을 결정했다. 미국은 감사의 표시로 1천만 달러를 원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정부 내에선 식량난을 해결하는 데 원조자금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생각은 그 보다 더 원대한 데 있었다.

원조자금 1천만 달러를 합쳐 한국의 공업발전에 기여할 종합연구소를 설립하자는 거였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연구의 산실인 ‘카이스트(KIST)’는 박정희 대통령의 심모원려와 혜안에서 탄생 됐던 것이다.

초대 연구소장이었던 고 최형섭 전 과학기술처장관은 전국 30여 곳을 둘러 본 뒤 대통령에게 서울 홍릉 임업시험장을 연구소 부지 1순위로 보고했다. 농림부서 ‘안되다’며 펄쩍 뛰었다. 대통령은 그 자리서 농림부장관을 데리고 홍릉으로 갔다. “임업시험장도 중요하지만 과학기술연구소는 더 중요하다”면서 “38만 평을 모두 연구소에 내주라”고 지시했다.

KIST 설립 후 대통령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연구소를 꼭 찾았다. 해외에서 영입한 박사들에겐 집과 대통령 자신의 몇배 봉급을 제공했다.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 발전사를 연구한 미국 스티븐 데디 박사는 “과학기술 발전은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박정희라는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 KIST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초석이 됐다.

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국정 제1 목표는 대물림 해 온 가난으로부터의 해방과 보릿고개 해결이었다. 대통령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시켜 해외에서 모아 온 볍씨를 교배시키는 실험을 통해 우리 풍토에 맞는 품종개량에 총력전을 폈다. 마침내 300평 당 624㎏을 수확할 수 있는 ‘IR667’ 일명 ‘통일벼’ 개발에 성공했다. 그 결과 1977년 우리 국민이 먹고 남을 4천180만 석을 수확 ‘범보다 무섭다’던 보릿고개가 사라졌다.

한 지도자의 지혜로운 판단이 국민을 굶주림의 질곡에서 해방 시켰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목마전이 된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등을 세워 자신의 몰락을 자초한 박근혜 대통령은 어째서 아버지의 탁월한 지혜를 본받지 못했을까. 참 불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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