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둑 같은 사내와 한번 타오르지 못하고
손가락이 긴 사내와 한 번 뒤섞이지도 못하고
물불가리는 나이에 도착하고 말았습니다

모르는 척 나를 눈감아줬으면 싶던 계절이
맡겨놓은 돈 찾으러 오듯이 꼬박꼬박 찾아와
머리에 푸른 물만 잔뜩 들었습니다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머리만 쓰고 살다가
마음을 놓치고 사랑을 놓치고 나이를 놓치고
내 꾀에 내가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번 생은 패(覇)를 잘못 썼습니다






감상) 놓치고 만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니, 그것보다 먼저 잡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늘어난 나이테가 있고 익숙한 고통이나 슬픔이 있고 채우지 못한 삶의 유리병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돋보기가 있다 세금만 비싼 낡은 자가용이 있다 놓치고 만 것들…… 누군가 지금 행복하냐고 자꾸 물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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