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경주남산‘> ’ 탑골 사방불 동쪽면 부처, 보살, 비천. 1986 햇살이 내리쬐면서 생기는 명암을 절묘하게 포착했다. 불상 위쪽의 비천상이 또렷하게 드러났고, 수풀이 그림자를 드리운 자취도 마치 붓질한 듯한 효과를 냈다.
신라인의 불국토 ‘경주 남산’, 다큐사진의 명인 강운구(74) 사진가가 찍었으되 강운구의 것만이 아닌 강운구 사진전 ‘경주 남산’이 서울 류가헌에서 열렸다.

경주 남산. 높이 갓 500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신라의 성역이던 천 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품어 온 역사적 의의와 산적한 유물들을 생각하면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키 어려운 산이다.

‘경주남산’이 경주를 넘어 우리 모두의 귀한 자산이듯이, 사진가 강운구가 찍은 ‘경주남산’ 역시 마찬가지다.

1987년부터 골 깊고 능선 가파른 남산 곳곳을 발로 길을 내며 찾아다니기 수년. 아침 해에 얼굴을 드러내는 동남산의 불상들을 찍기 위해서는 밤을 낮 삼고, 저녁 해에 환해지는 서남산의 불상들을 찍기 위해서는 산에서 밤들기를 기다렸다.

일 년에 한번 동짓날 해 뜨는 순간에만 한없이 후덕한 표정을 드러내는 감실불상은 또 어떠했을지, 사진 속 꽃 피고 눈 쌓인 자연과의 조화까지 살피면, 이 사진가의 행보를 가늠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누가 다시 경주남산을 이와 같이 찍을 수 있으랴”가, 강운구의 경주남산에 대한 일관된 평이다. 강운구가 찍기까지는 이전에도 없던 사진이지만, 신라 이래 천년 세월보다 최근 십 수 년 새에 더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경주남산이고 보면 이후에도 다시 없을 사진이다.

강운구 ‘경주남산’ 불골 석굴의 여래좌상. 1984
저 멀리 농담을 달리하며 아스라이 멀어지는 능선들을 뒤로 한 채 나무인양 바위인양 삼층석탑을 세운 용장골능선. 헌화인 듯 발치에 분홍 진달래를 피운 삼릉골 관음보살입상, 바위에 상반신만 드러난 탑골의 승상은 미처 땅속에서 거두어 올리지 못한 장삼자락을 흙 위에 긴 빛 자락으로 드리우고 있다. ‘경주남산 석불과 석탑들의 공통적 특징이 자연과의 조화에서 오는 부드럽고 따듯한 친밀감’이라 했으니, 한 장 한 장의 사진들이 그러한 경주남산의 특징들을 그득히도 담아내고 있다.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 불상들 저마다의 인상은 어떠한가. 강운구의 경주남산에 대해 “대상의 내부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친밀한 것과 만날 수 있다는 강운구 씨의 미학은 부처의 얼굴 묘사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저마다 얼굴이 다른 부처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강운구 ‘경주남산’ 탑골 사방불 남쪽 바위 나무 아래의 승상. 1985.
‘부처 얼굴이라기보다 숱한 역경 속에서 끈기 있게 버티어 온 할머니의 얼굴’ ‘어수룩하고, 아픈 듯, 찡그리는 듯, 웃는 듯 하여 거의 표정이 없는 표준 한국인, 아니 나이 든 한국인의 얼굴’. 이것이 사진가 강운구가 경주 남산의 부처들에서 찾아낸 얼굴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남겨진 강운구의 경주남산 사진들은 강운구가 찍었으되 강운구의 것만도 아닌, 우리의 경주남산이다.

경주남산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신관 개관 기획전으로 열린 강운구 사진전 ‘오래된 풍경’에 그 일부가 선보여졌을 뿐, 단일 전시로 오롯이 묶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디지털 이전 필름으로 촬영된 이 사진들은, 전시에서 처음 흑백으로 선보여진다. 색의 수런함이 사라짐으로써 더 깊어지는 고요를 중시한 것이다.

전시와 함께 ‘경주남산’(열화당, 흑백, 2016)도 출간돼 선보였다. 경주 향토사 연구가 윤경렬이 “나라가 선 후 반세기 가깝게 흘러도 아무도 돌보지 않던 남산의 신비를 격 높게 뜻 깊게 세상에 소개해 준 책”이라 찬사 한 ‘경주남산’(열화당 1987)을 보다 널리 나누어 보기 위한 보급판 형태이다.

강운구, 저 멀리 농담을 달리하며 아스라이 멀어지는 용장골 능선.
전시는 지난해 12월 6일부터 1월 8일까지 열렸다. 통의동 한옥에서 7년 여 간 서촌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 해온 사진 위주 류가헌이 새롭게 청운동 시대를 여는 이전 개관전시이기도 하다.

사진가 강운구는 ‘마을 삼부작’, ‘우연 또는 필연’, ‘오래된 풍경’등의 전시와 사진집, 연재물을 통해 산업화에 밀려 사라져 간 우리 고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의 사진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위로와 맨 얼굴 같은 진실함이 담겨있어, 사진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조차 많은 아낌을 받고 있다.

고교시절 처음 카메라를 잡고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본인의 증언대로 ‘하여튼 사진가’로 살아온 강운구는, 언론사를 거쳐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며 사진인생 40여 년 간 자신의 마음에 닿는 작업의 결과물들을 꾸준히 쌓아왔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