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높이 갓 500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신라의 성역이던 천 년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품어 온 역사적 의의와 산적한 유물들을 생각하면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키 어려운 산이다.
‘경주남산’이 경주를 넘어 우리 모두의 귀한 자산이듯이, 사진가 강운구가 찍은 ‘경주남산’ 역시 마찬가지다.
1987년부터 골 깊고 능선 가파른 남산 곳곳을 발로 길을 내며 찾아다니기 수년. 아침 해에 얼굴을 드러내는 동남산의 불상들을 찍기 위해서는 밤을 낮 삼고, 저녁 해에 환해지는 서남산의 불상들을 찍기 위해서는 산에서 밤들기를 기다렸다.
일 년에 한번 동짓날 해 뜨는 순간에만 한없이 후덕한 표정을 드러내는 감실불상은 또 어떠했을지, 사진 속 꽃 피고 눈 쌓인 자연과의 조화까지 살피면, 이 사진가의 행보를 가늠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누가 다시 경주남산을 이와 같이 찍을 수 있으랴”가, 강운구의 경주남산에 대한 일관된 평이다. 강운구가 찍기까지는 이전에도 없던 사진이지만, 신라 이래 천년 세월보다 최근 십 수 년 새에 더 큰 변화를 맞고 있는 경주남산이고 보면 이후에도 다시 없을 사진이다.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 불상들 저마다의 인상은 어떠한가. 강운구의 경주남산에 대해 “대상의 내부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친밀한 것과 만날 수 있다는 강운구 씨의 미학은 부처의 얼굴 묘사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저마다 얼굴이 다른 부처들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경주남산은 부산 고은사진미술관 신관 개관 기획전으로 열린 강운구 사진전 ‘오래된 풍경’에 그 일부가 선보여졌을 뿐, 단일 전시로 오롯이 묶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디지털 이전 필름으로 촬영된 이 사진들은, 전시에서 처음 흑백으로 선보여진다. 색의 수런함이 사라짐으로써 더 깊어지는 고요를 중시한 것이다.
전시와 함께 ‘경주남산’(열화당, 흑백, 2016)도 출간돼 선보였다. 경주 향토사 연구가 윤경렬이 “나라가 선 후 반세기 가깝게 흘러도 아무도 돌보지 않던 남산의 신비를 격 높게 뜻 깊게 세상에 소개해 준 책”이라 찬사 한 ‘경주남산’(열화당 1987)을 보다 널리 나누어 보기 위한 보급판 형태이다.
사진가 강운구는 ‘마을 삼부작’, ‘우연 또는 필연’, ‘오래된 풍경’등의 전시와 사진집, 연재물을 통해 산업화에 밀려 사라져 간 우리 고향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왔다. 그의 사진에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위로와 맨 얼굴 같은 진실함이 담겨있어, 사진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조차 많은 아낌을 받고 있다.
고교시절 처음 카메라를 잡고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본인의 증언대로 ‘하여튼 사진가’로 살아온 강운구는, 언론사를 거쳐 프리랜서 사진가로 활동하며 사진인생 40여 년 간 자신의 마음에 닿는 작업의 결과물들을 꾸준히 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