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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중국 춘추시대 정(鄭) 나라의 재상 정자산(기원전 582~522)은 탁월한 정치가이면서 외교에도 능했다. 정나라는 대륙의 중원에 위치한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구주의 목구멍’이라 불릴 만큼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늘 잠재적 위협에 시달리는 처지였다. 오죽하면 ‘조진모초(朝晉暮楚)’라 했을까. 당시 북쪽에는 초강국인 진나라가 자리 잡고 있고, 남쪽에는 떠오르는 신흥강국인 초나라가 버티는 형국이니 ‘아침이면 진나라로 들어가고, 저녁에는 초나라로 들어가는’ 식의 눈치 보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약소국이 정나라였다.

정나라의 지리적 약·단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자산은 냉정한 정세분석을 통해 주변 강대국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꿰뚫고 있었다. 당시 정세는 막강한 군사력의 진나라가 스스로 패권국가임을 자부하는 가운데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한 초나라 역시 대등한 힘을 지닌 패권국가 지위를 확보하려는 야심을 드러내 보이는 때였다. 이에 정자산은 ‘이 땅의 주인은 진나라다’라며 진나라의 패권을 인정함과 동시에 ‘우리는 초나라와도 친하다’라고 주장하며 두 강대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전술을 펼쳤다. 결국 ‘조진모초’ 하던 약소국 정나라는 진나라를 따르되 초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종진화초(從晉和楚)’의 외교전술로 강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정자산의 외교 전략은 ‘첫째는 절대 침략당하지 않을 것, 둘째는 강대국의 착취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두 가지 큰 틀에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정자산은 정나라를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비록 작지만, 결코 삼키지도 공격하지도 못할 만큼 강한 고슴도치와 같은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외교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군의 사드기지 배치문제로 이웃 국가인 중국의 외교적, 경제적 압박은 점점 더 심해지고, 소녀상 설치 문제로 일본은 주한대사를 본국으로 귀국조치 시키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예측불허의 새로운 미국 대통령 등장으로 한·미 간의 안보지원문제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속수무책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는 현 정부의 무능한 외교가 가장 큰 원인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아무리 국가안보와 직결된 사드배치 문제라 하더라도 충분히 예상되는 주변국들의 반발을 고려한 전략적인 외교노력은 분명히 선행되었어야 했다. 더욱이 많은 국민의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음으로써 억울한 피해자로서의 정당한 권리 주장도 어렵게 만든 것은 현 정부 스스로가 자초한 외교적 실책이다. 최소한 자국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한 채 강대국과의 외교에서 무능함만을 드러낸 현 정부의 외교철학 부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약소국이었던 정나라가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강소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정자산의 뛰어난 외교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력한 내정개혁을 통한 정치적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자산은 귀족들의 기득권을 제한하고 공정한 법치를 통해 백성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무엇보다 정치가로서의 훌륭한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 엄중한 시기에 국내 정치마저 요동치고 있다. 더불어 부패한 기득권 정치를 청산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변화의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고슴도치처럼 작지만 강한 국가, 대한민국 건설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지금 정자산 같은 안보와 외교와 혁신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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