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정당의 이름은 이념적 가치와 정체성, 정치적 지향점을 명확하게 담고 있어야 한다. 정당의 이름에는 민주나 자유, 공화, 노동 등 전통적인 이념적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 보편적이다.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지만 우리나라 당명 만큼 쉽게 만들어졌다가 쉬 사라지는 것도 없는 듯하다. 평균 수명이 2.6년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보면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알 수 있다. 세간에는 정당 이름의 명멸을 빗대 ‘한 번 쓰고 버리기 딱 좋은 일회용 기저귀냐’는 비아냥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비해 미국의 공화당 민주당, 영국의 노동당 보수당 등은 오랜 전통의 당으로 이름을 통해 가치를 구체화하고 노선이나 지지자들의 영역을 구분하고 있다.

최근에는 당명에 이념적 가치보다 새로운 비전과 가치나 감성적 색채를 담는 것으로 트렌드가 변했다. ‘열린우리’ ‘새누리’ 심지어 ‘친박연대’ 등으로 이념이 탈색돼버렸다. 1997년 한나라당이 순우리말 당명을 채택한 이후 순우리말 당명도 심심찮게 등장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유, 보수, 진보, 공화 등 이념적 가치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이전의 정당들이 죄다 더럽혀 놓았기 때문에 쓰지를 못하게 됐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새누리당 비박계 탈당 의원들이 중심이 된 ‘개혁보수신당’이 당명을 ‘바른정당’으로 정했다. 바른정당이 당명을 정하면서 ‘보수’가 들어간 당명은 모두 초반에 탈락시켰다. 당 관계자는 우리가‘보수’라는 것을 국민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보수’라는 단어가 들어간 당명 대신 ‘바른’으로 선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존 체제 속의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보수’세력이 그간 부패와 무능으로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보수’의 가치를 더럽혀 놓아 더 이상 표를 얻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른정당은 보수의 적통을 자처한다면서 선명한 ‘보수당’이란 이름을 책상 아래로 던져버렸다. 막 당명을 정하고 당의 로고와 색상 등을 결정한다지만 ‘이 당은 또 며칠을 갈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막상 대통령 선거일이 가까워지면 보수의 기치 아래 ‘보수대연합당’이란 새로운 당이 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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