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하나가 양푼이 밥을 엎지르고 나왔는지 씩씩거리며 간다
뒤돌아보며 누구에겐 듯 씨물거려 쌓는데
저 멀리 떨어진 신작로가 서서히 붐빈다

여자는 멀리 있는 것들에게 단단히 화가 난 모양,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에다 대고 종주먹을 날리고
멀찌감치 어른거리는 아지랑이에게 꽥 소리를 지르고
멀리 떨어져가는 내게다 대고
하얗게 눈을 흘긴다

곱창 밴드가 숱 많은 머리칼 끝에서 대롱거리고
속옷이 허리께에서 밀려나와
여자가 여자에게 조금씩 빠져나가는 찰나

봄나물 한 양푼 잘 비빌 듯한 한 사내가 다가와
밭에서 무 한 뿌리를 잘 뽑아 올리듯 여자의 머리를 들어올려 다시 묶어주고
다 뽑히기 직전의 여자 속에 고이 여자를 심어준다

두툼한 손길이 다독이며 지나가자
말갛게 가라앉은 쌀뜨물 같은 얼굴로
팥고물이 찰떡에 엉겨붙듯 사내에게 묻혀가는 저 여자

(하략)





감상)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웅크리고 있다 나가니 꽁꽁 언 아침에도 사람들은 붐빈다. 날씨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들은 찬 기운을 떨쳐내느라 발을 동동거린다 땅이 얼어붙었다고 아무도 그 길에 나서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겨울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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