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사진작가
사진집 ‘경주남산’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꽤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그 책을 본 사람은 많지가 않다. 고맙게도, 끈질기게도 열화당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1987년부터 지금까지도 책방에 깔아 놓고 있다. 그러나 거의 팔리지 않는다. 내 책이지만, ‘안 팔린다고 좋지 않은 책은 아니다’라고 나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그 책은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수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말하듯이, 낡지도 않았다. 그 ‘경주남산’(‘능으로 가는 길’과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도)을 이제 좀 추려서 전시라는 다른 형태로, 전시 도록이라는 책으로 제시하게 됐다. 나는 이렇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줄 알았다.

뭔가 새로 일을 시작할 때는 준비해야 할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마음의 작정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역사가 오래된 유적지를 찍을 때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물론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지만, 작가의 주관이나 기호가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에 있는 과거에서, 어떻게 해서든 보다 과거를 떠올리게 표현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처한 현재의 상황에 주안점을 둘 것인지를 작정해야만 한다.

처음에 경주 남산을 돌아보며, 나는 현재의 상태를 찍을 수밖에 없지만 과거를 은연중에 느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게 됐다. 그러다 생각이 공기와 빛깔에 미치었다. 천몇백 년 전의 신라 하늘은 지금보다 더 맑았을 것이고, 공기는 지금보다 더 투명했을 것이며, 태양은 더 빛났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의 빛깔은 지금보다 더 짙었겠다. 그래서 옛날의 풍부했을 빛깔에 대해서 상상했다. 그리고 짙은 고대의 빛깔이 현실의 폐허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게 됐다. 그러다가 코다크롬(Kodachrome) 필름이 나타내는 깊이 있는 색감을 떠올렸다. 그 필름은 우리나라 안에서는 구할 수 없었고, 어찌어찌해서 찍었다 하더라도 현상은 외국으로 보내서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부처들의 ‘천 년 세월의 비와 바람이… 부드럽게’한 화강암 피부를 잘 묘사하려면 큰 카메라에 큰 필름을 써야만 했다. 그런데 코다크롬은 큰 필름으로는 생산되지 않았다. 그래서 큰 카메라에는 엑타크롬(Ektachrome) 필름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될 수 있는 한 빛깔이 진하게 나오도록 하려고 했다. 대상과의 거리와 접근성, 그리고 형태와 질감에 따라서 코다크롬을 넣은 35밀리 카메라, 엑타크롬을 넣은 120카메라와 4×5인치 카메라, 그리고 6×9㎝ 홀더를 부착한 4×5인치 카메라를 썼다. (규격의 단위가 제각각인데, 어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진 하는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이렇게 쓴다.)

‘경주남산’을 편집할 때는 그 책의 판형에 맞춰서, 큰 필름으로 찍은 사진들은 가장자리를 조금씩 크로핑(cropping)했다. 이번의 ‘오래된 풍경’ 전시와 책에서는 6×6판 두 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4×5, 6×9, 6×6판을 35밀리 필름처럼 2 대 3 비율이 되도록 크로핑했다. 2 대 3 비율이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보편적 규격의 책에도 알맞게 편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사진들은 거의 다 사진 같지 않다. 그런 추세가 어찌나 강한지, 똑바른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한쪽으로 밀려나 주눅이 들어 있다. 유행이란, 더 고상하게 말하자면 사조(思潮)라는 것은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성립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것을 따라가며 늘 바꾸는 사람은 많고 바뀌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소수에 속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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