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적 기능에 장애가 있는 대통령 후보자 연설 발견땐 심사숙고 한 후에 투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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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조만간 대통령을 다시 뽑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선제 개헌 후 저의 대통령 투표 전적은 2승 4패입니다. 실패한 네 번의 경험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다 실패의 예감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별반 실망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긴 두 번은 긴가민가하면서 찍었습니다. 이겼을 때 기분이 꽤 좋았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찍는 후보자가 꼭 당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까닭은 간단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저도 좋고 나라도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입니다. 먹을 만큼 먹은 나이인데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의 연설’이라는 제목을 달고 ‘누구를 뽑을 것인가’에 대해 한 말씀 드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언어상실증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말과 관련한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언어상실증, 혹은 실어증 환자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단어 찾기에 큰 곤란을 느끼는 베르니케 실어증, 문법적 기능에 장애가 있는 브로카 실어증 같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브로카 실어증 환자에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한번 해 보라고 하면 “…가난하고 …마루를 닦다가 …깨끗하게 …가난하고 …언니와 엄마 …무도회, 무도회에서 왕자… 신발…” 이라고 말합니다. 원인과 결과,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의 이유 있는(혹은 희망적인) 번짐 등등 이야기에 꼭 필요한 선후(先後) 관계 맺기 능력에 심각한 결함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베르니케 실어증은 적확한 단어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병입니다. 안경을 찾으면서 “유리, 유리 있잖아!”라고 하거나 왕을 ‘왕관’, 배를 ‘항해’라고 말해버립니다. 말하고 싶은 것 대신에 부속, 장식품이나 그것의 기능, 역할을 대신 말합니다. (지금 저도 아내에게 유자차 한 잔을 부탁하면서 “그거 있잖아 꿀에 담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의 ‘대통령의 연설’은 주도면밀한 대필자들에 의해서 작성되기 때문에 실어증 증세가 여간해선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통일은 대박’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혼이 없는 인간’ 등은 예외적인 것들입니다). 그러나 즉흥 연설이나 토론회에서의 즉문즉답 같은 데에서는 다릅니다. 자기 것이 노출됩니다. 평생 소설가로, 문학교사로 살아온 언어 전문가로서 저의 소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브로카 실어증을 앓고 있는 이는 절대 대통령 같은 큰 자리에 올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베르니케 실어증은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서나 조금씩은 발견되는 증세입니다. 그러나 브로카 실어증은 당사자의 인생 학습 과정에 모종의 심각한 ‘누락된 사항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합니다. 그의 내면에 인지적, 정서적으로 평균에 미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대체로 이들은 남모르게 우울증을 겪고 있을 확률이 높고, 자기도 모르게 ‘아니’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언어습관을 가집니다. 그런 ‘대통령 후보자의 연설’을 발견하면 반드시 숙고해야 합니다. 말이 곧 사람이니까요.

언어상실증과 관련해서 주권자인 우리가 꼭 앓아야 하는 병도 있습니다. ‘음색인식 불능증’이 그것입니다. 목소리에 담긴 희로애락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는 병입니다. 그 병을 앓으면 목소리의 표정을 읽어낼 수 없기 때문에 말을 들을 때면 상대방의 얼굴과 태도와 움직임을 유심히 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항상 앞뒤가 또박또박 들어맞는 문장만을 요구해야 합니다. 문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비된 문장이라면 말투와 감정을 못 느끼더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우리 음색인식 불능증 유권자들을 거침없이 설득하고 웃기고 울리는 ‘대통령의 연설’이 있다면 그것에 투표하십시오. 사람은 보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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