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승차권은 세계 어디에서나 유효하였을 것이다. 빅맨(Big Man)이었던 반기문은 할 수 있는 일이 참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시리아 국민이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정부군에 의하여 더 많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도,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강행 및 팔레스타인 공습에 대하여도, 심지어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하여도 강대국들의 눈치만 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역사상 가장 한 일이 없는 사무총장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단,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철수를 보면서도 그는 유엔사무총장으로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이 있었으면서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팩트 (Fact)다. 굴욕적인 한·일 정부 간 위안부협상에 대하여 그가 즉각 긍정적 평가를 한 것을 우리 국민은 잊지 않는다. 이제 와서 말을 교묘히 비틀 수는 있어도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귀국 일성이었던 ‘진보적 보수’와 같은 말장난은 기름 장어들의 전유물이다. 그는 또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결의안이나 북한 인권에 대한 결의문 등 수많은 유엔결의안을 통과시킨 장본인이면서 유엔사무총장의 정치 참여를 제한한 유엔결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유엔 결의보다는 우리나라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더 규범력이 높다는 것이 된다. 이를 애국주의라고 해야 하나? 그는 할 수 있었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대과 없이 무탈하게 임기를 마치는 것에 집중하며 살았다. 공항철도 승차권을 사면서 만 원권 두 장을 한꺼번에 넣거나 양손을 모아 큰 하트를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는 외교부 시절부터 유엔 총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의전(儀典)으로 둘러싸인 삶을 살았을 것이지만 국민은 그에게 꽃가마 태워줄 여유가 없다. 그는 자기 한 몸 불사르겠다고 하지만, 국민은 그가 그 한 몸 불사르지 말고 시골에 가서 그냥 잘 쉬었으면 한다. 이런저런 책을 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다 세월이 5년 정도(선거법상 국내거주요건은 여기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흐르게 되면, 그제야 그도 만 원짜리는 한 번에 한 장씩만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드라마처럼 주차 문제까지 해결해 주었을지 모를 유엔이나 미국이라는 공간적 경계, 10년이라는 유엔 총장 임기의 시간적 경계를 모두 지나버린 지금, 당신의 승차권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 본 칼럼의 제목으로 로맹가리의 소설 제목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의 일부를 차용하였다. 프랑스 외교관이었으며 로맹가리이자 동시에 에밀아자르였던 그를 늘 존경하고 있다는 고백을 글 끄트머리에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