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느 도시에 멈춰 섰다 주인이
탁자를 정원으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첫 번째 별이
빛을 발하고 사그라진다 우리는 빵을 부스러뜨렸다

석양 무렵 잡풀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울음 아이의 울음 그 너머 벌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 대지의 기름진 냄새

성벽에 등을 대고 앉은 사람들은
보았다 교수대가 놓여 있는 지금은 보랏빛인 둔덕을
담벼락에 뒤엉킨 처형장의 담쟁이덩굴을

우리는 배불리 먹었다

아무도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을 때면 늘 그렇듯



<감상> 누군가의 경사를 축하하러 갔을 때 우리는 당연한 듯 밥을 먹고 그것도 아주 많이 먹고 돌아온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많이 먹고도 완전한 포만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봉투를 내밀고 식권을 받고 그 의식이 우리의 가슴을 허전하게 해버리기 때문이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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