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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병원 원장

당나라에 가도(賈島)라는 시인과 그의 시를 알아본 한유(韓愈)에 대한 얘기를 빌려 병적인 집착과 창조적인 집착에 대해 비유해 보고자 한다. 그때 시인 가도는 ‘문을 밀 것인가, 두드릴 것인가’에 대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길을 가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 이 차이 하나가 그가 쓰고 있는 시 한 편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중요한 마무리였기 때문에 오직 그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시는 이랬다. ‘가까운 데 이웃이 적어서 한가로운데/ 풀숲의 길은 황량한 들판으로 들어가네./ 새들은 연못가 나무위에 잠들고/ 스님이 달빛아래 문을 두드리네.’ 결국 그는 그의 시 마지막 행에서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고(敲)자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는 두드리는 것 보다는 민다는 뜻인 ‘퇴(推)’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비록 글자 한 자지만 그 한자가 주는 의미가 시의 전체를 결정짓는 엄청난 큰 차이가 있다. 시인은, 새들도 잠든 고요한 달밤에 문을 조용히 밀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두드릴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어느 날 노새 등에 얹혀 가면서도 밀 것인지 두드릴 것인지를 고민하던 그 시인은 그만 길을 지나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히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행차하던 고관이 괘씸히 여겨 그를 끌어오게 하였고 고관 앞에 꿇어앉힌 가도는 바로 글자 한 자를 결정하지 못해 생각하다 그리되었다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고관은(그 고관은 당시의 문장가 한유(韓愈)였다) 무례를 꾸짖기보다는 오히려 호쾌하게 웃으며 “미는 것(推) 보다는 두드리는 것(敲)이 좋겠다”는 자신의 의견까지 내어놓았다고 한다. 결국, 그 시인은 고요한 달밤에 문을 ‘두드리는’ 시를 쓰게 된다.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의 차이는 뭘까? 새들도 잠든 깊은 밤에 바랑 지고 먼 산길을 걸어온 지치고 힘든 스님이 그냥 조용히 문을 ‘밀고’ 들어간다면, 그다음의 일은 가만히 이불 펴고 잠들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그 스님이 문을 ‘두드린다’면 고요한 정적이 깨질 것이고 깊은 밤을 지키던 부엉이도 큰 눈을 껌뻑일 것이고 두드리는 소리에 단잠을 깬 누군가가 걸어 나와 스님을 맞을 것이므로 바야흐로 시가 역동성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시인은 문을 두드리는 것을 택하게 되고 게다가 한유와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문학 작품을 완성하기 전 한 문장 한 낱말을 다시 생각하고 또 가다듬어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여 비로소 결정하는 행위를 바로 퇴고(推敲)라 하고 이것 없는 문학 작품은 없다. 화가가 어떤 구도를 잡을 것인지에 대한 집착, 음악가가 어떤 화음을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집착, 건축가가 어떤 모습의 창(窓)을 낼 것인지에 대한 집착들은 창조를 위한 집착이고 승화된 집착이다. 그 집착의 끝은 창조의 결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귀한 집착이다. 모든 창조적인 활동에는 창조를 위한 집착이 있고 그것들로 인해 아름다운 시가 되고 음악이 되고 거룩한 건물이 되고 멋진 요리가 된다.

의미 없는 것에 대한 집착, 아주 사소한 것에 대한 집착, 피하고 싶은 집착, 버리고 싶은 집착, 스스로도 괴롭고 남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집착은 병적인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병적인 집착을 주로 나타내는 병을 ‘강박증’이라 한다. 집착과 더불어 손을 반복해서 씻기도 하고 끝없이 확인하기도 하며 반복되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기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강박증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병이다. 창조적인 집착과 병적인 집착은 너무나 다른 집착이다.
 

곽호순병원 원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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