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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 법학박사

인간의 권력 욕구는 집단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극심한 정국의 혼란 상황에서 조기 대선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자그마치 22명의 잠룡들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이른바 백가쟁명 상황이다. 경제학으로 풀면 완전경쟁시장이 실현된 느낌이다. 유권자인 소비자들은 최고의 상품을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대선 시장에 나온 상품의 품질은 도토리 키 재기가 아닐 수 없다.

작금의 정국은 집단성원에 대한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는 심리적 불안감이 짙은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다. 집단최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언론은 매 주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 알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 집회 주최 측은 초기에는 은밀하게 시민들의 의견이나 선택을 조작하여 다른 경우라면 저항하였을 그들을 강제적으로 복종시켜 광장으로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회의 추동력이 떨어지니 철 지난 주제를 돌려가며 마이크 볼륨을 높이고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은 물리학에서 기본개념이 에너지이듯 사회과학에서 기본개념은 권력이라고 갈파했다. 권력은 무엇인가? 청와대와 검찰과 국회만 권력이 아니다. 권력은 영향력 또는 잠재적 영향력 그리고 성과에 대한 통제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권력은 방송, 재벌, 시국집회의 지도부, 노조 등도 엄연한 권력기구이다. 권력은 집단역학 현상으로서 집단 내부의 구성원들에게 강제적으로 동조를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다. 협동과 공조도 있지만, 긴장과 갈등, 반목, 저항 등이 권력현상에 더 잘 어울리는 메뉴이다.

바라건대 이른바 잠룡들은 이러한 권력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승천을 꿈꾼다면 몇 가지 권력기반을 준비해야 한다. 우선 국가를 개조할 수 있는 정치적 개혁 의지를 가져야 한다. 권력창출 후 자신의 조력자들과 권력을 나누는 보상의 교환이 필요하다. 전리품 분배를 통해 그들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법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해야 한다. 나아가 승천은 합법적인 권력쟁취를 통해야 한다. 자신의 권력의지가 공평함이나 사회적 책임감 및 호혜성의 원리를 벗어나게 되면 사회성원인 국민의 내재화된 충성심은 기대할 수 없고 합법적 권력이라도 지지를 잃게 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대권을 꿈꾼다면 집단의 통제력의 근원이 성원들의 존경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여론조사의 지지율을 존경심으로 오해하지 말라. 현재 많은 사회성원은 정치적 불만과 경제적 고통상태에 직면하여 카리스마 넘친 지도자를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난마를 해결할 잠룡은 특수하고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한다. 중병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을 대수술하려면 본인 스스로 전문가여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과 한배를 탄 조력자들 모두 전문가로 팀을 꾸려야 한다. 그래야만 집단최면의 국민에게 출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사실과 정보자원을 활용해 최고의 정책으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추락하는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들과 같은 운명에 처해있다. 잠룡들 중 어느 누군가 한 명은 기장으로서 대한민국호를 조종할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호의 직접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권력을 가진다. 미국 전국운송안전위원회(NTSB)가 노스웨스트 여객기 추락사고를 조사한 결과 기장이 위기 상황에서 승무원들의 합리적 조언을 거부하고 독단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국가의 운영은 비행기 조종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승객인 국민과 소통하고 자신의 운항을 도와주는 승무원(공직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잠룡이 승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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