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한 가지 키워주는 것은 불빛이다.
우리도 아직은 잠이 들면 안 된다.

거대한 어둠으로부터 비롯되는
싸움, 떨어진 살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아직은 똑똑히 보고 있어야 한다.

쓰러져 죽음을 토해내는 사람들의 아픈 얼굴,
승리에 굶주린 그 고운 얼굴을
아직은 남아서 똑똑히 보아야 한다.

밤이 마지막으로 키워주는 것은 사랑이다.

끝없는 형벌 가운데서도
우리는 아직 든든하게 결합되어 있다.

쉽사리 죽음으로 가면 안 된다. 아직은 저렇게
사랑을 보듬고 울고 있는 사람들, 한 하늘과
한 세상의 목마름을 나누어 지니면서
저렇게 저렇게 용감한 사람들, 가는 사람들,
아직은 똑똑히 우리도 보고 있어야 한다.



<감상> 밤이 그림자라 생각한 적 있다. 한낮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길게 혹은 짧게 그림자를 달고 있는 거라 생각한 적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밤의 한 가운데서 밤을 바라봤을 때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라는 걸 알았다. 사랑이나 추억 같은 것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밤은 더 자세한 밝음이었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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