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주)컬쳐팩토리 대표이사.jpg
▲ 이상원 컬처팩토리 대표
2012년 7월 일본 정부가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방침을 밝히며 중·일 간 일촉즉발의 영토분쟁의 긴장상태를 형성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중국 전역은 반일감정으로 뒤덮였다. 북경의 주중 일본대사관에는 시위대가 몰려와서 대사관 주위를 둘러싸고 벽돌을 던졌으며 상하이 등의 일본식당 유리창에는 돌이 날아들었고, 식당 입구에는 커다란 오성홍기가 내걸린 보도를 중국 현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는 중국 남경에서 중국판 뮤지컬 ‘미용명가’를 강소성연예집단 연극원과 합작으로 제작하고 있었다. 남경은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사건으로 가슴 아픈 도시이다. 남경대학살사건은 일본군이 남경침공을 개시한 1937년 12월 1일부터 6주간 동안 남경시 일원에서 자행됐다. 30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일본은 아직도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남경도 중·일양 국 간의 영토분쟁에 대해 일본에 대한 분노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경의 일본식당 정문에는 ‘일본 음식점이지만 주인은 중국인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음은 물론 거리를 달리는 일본산 자동차 상표 위에는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로 스티커를 붙여서 운행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올해는 한·중수교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992년 정식수교를 한 이후로 한·중관계는 황금시대를 구가해왔다. 2015년은 그 정점에 있었다. 항일승전 70주년을 맞이해 중국천안문광장에서 대대적인 행사가 열렸는데 한국의 대통령까지 참가하였으니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정점에 달하였다. 그러나 불과 1년여 사이에 한·중 관계는 꽁꽁 얼어 붙어 해빙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사드’배치 결정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보복조치가 전방위로 나날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 와중에 국내보도에서는 찾기 힘들지만,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들의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중국 전역에는 한국 교민이 100만 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필자도 자주 방문해 많은 지인이 살고 있는 상하이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 교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경북대학교, 영남대학교동창회 모임이 있을 정도로 대구·경북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상하이 민항구(閔行區) 홍췐루(虹泉路)에는 북경 왕징(望京) 지역처럼 한국인들이 몰려 사는 한인촌이 형성돼 있다. 한인촌에서는 한국의 생활 방식 그대로 생활하거나 중국어를 몰라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국의 한 도시처럼 돼 있다. 요즘 상하이 한국인촌 역시 한·중 관계의 경색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으로 상하이 한국인촌에는 그동안 한류를 중국 내에서 체험하려는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한국 불고기, 감자탕, 떡뽁이, 삼계탕, 치맥 등 한국 음식은 물론 찜질방 같은 한국 문화적 체험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돌아갈 때는 한국슈퍼마켓에 들러 한국 라면, 고추장, 김, 김치 등 한국산 식품을 구매해 가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중수교 25주년을 맞은 지금 상하이 한국인촌에는 중국인들의 발걸음이 줄어들어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으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어느 사이엔가 중국에 한류(韓流)가 실종된 틈을 타 일류(日流)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에 개봉돼 중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을 비롯해 일본산 자동차 판매율의 증가와 중국인의 일본으로의 여행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류는 단순한 문화영역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중국 수출, 관광, 의료 등 모든 영역에서 파급 효과를 발휘하며 국내 산업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공들여 쌓은 한류탑이 한순간에 일류(日流)로 역전되며 무너져 신기루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야만 하는 걸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