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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만 20세이던 선거권 연령이 19세로 낮아진 것은 2005년 8월 4일부터였다. 성년의 기준이 만 19세로 낮춰진 것이 2013년 7월 1일이었다. 대부분 국가들이 선거권과 성년의 기준을 18세 이하로 정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보면 아직도 우리의 갈 길이 멀다. 조기 대선 실시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문제, 이른바 선거연령 하향 논의가 활발해졌다. 가칭 개혁보수신당이라던 새누리당 탈당파들(다시 스스로를 ‘바른정당’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이 선거연령 18세 하향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해 선거연령인하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도 하였으나 선거에서 유불리를 고려한 듯 그들은 돌연 동참 의사를 철회해 버렸다.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한, 이제 더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만으로는 선거연령을 인하하는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대선전에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야당만 믿고 있을 수도 없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언제부턴가 모두 우리 국민의 몫이 되었다. 국민이 힘을 모아 선거연령 하향을 끈질기게 요구해야 한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한다. ‘새누리당의 기본적인 입장은 선거권을 만 18세로 낮추는 것에 동의하지만, 선거연령을 낮추면 고등학교 3학년들이 ‘정치에 휘말릴 것이 염려’되어 결국 선거연령을 인하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다. 말도 안 되는 언어유희다. 작년 초, 대통령이 경제활성화법안 입법 촉구 서명을 하던 시기에 각 대기업이 직원들에게 서명을 강요한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대기업들은 “직원들의 자발적 서명을 독려하였다”는 기상천외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나, ’자발적 서명’과 ‘독려’가 함께 공존하는 이런 말장난에 국민은 오래 속지 않는 법이다. 또한,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로 정치에 참여하여서는 안 된다는 식의 주장은 뜨거운 촛불 현장에서 초·중·고 학생들이 하는 즉석연설을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감히 이를 꺼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논리 정연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어른이 없을 정도였다. 본래 학교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이어야 한다. 나라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의무 중의 하나라는 것이 바로 학교에서 교육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두고 정치에 휘말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속칭 꼰대의 징표일 뿐이다. 이런 구태(舊態)는 어디서도 환영받기 어렵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만이 개개의 시민들이 정치적 의사를 밝히는 것을 두고 정치에 휘말린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을 국민은 잘 안다.

‘자칭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이 한 이야기는 더 가관이다. 그는 “저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바른정당이 선거연령을 18세로 인하하는데 동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문재인 전 대표가 ‘북한도 (선거권 연령이) 17세’라고 말한 것은 그런 북한 김정은 정권이 정당하다는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에 결국 선거연령 인하에 동의할 수 없다”는 황당한 논리를 폈다. 이른바 ‘기승전(起承轉)북한’식의 이러한 색깔 공세는 신물이 난다. 다른 사람의 말꼬리나 잡는 식의 이런 태도는 합리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한다. 계속 이런 모습만 보인다면, 보수가 둘이 아니라 열로 쪼개져도 국민의 지지를 다시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보수라는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이 진보라는 한 쪽 날개로만 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진보의 반대쪽 날개가 보수를 가장한 수구(守舊)라는 것이 확인되었다면 이를 과감하게 당장 잘라 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두 손 모아, 하루라도 빨리 우리의 겨드랑이 한쪽이 다시 가려워지고 그곳에 새로 제대로 된 날개가 돋아나게 되기를 기도하는 편이 더 낫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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