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서울 명동성당에서 70대의 한 거지 노인이 가톨릭 대상을 받았다.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사랑을 실천한 마음의 부자였다. 그는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 귀국한 후 충북 음성군 금왕면 변두리의 다리 밑에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흘러 들어갔다. 징용 때 당한 폭행과 부상 등으로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절름발이, 장님 등 자기보다 더 불행한 걸인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그들을 도왔다. 35년 동안이나 밥 동냥을 얻어 먹이고 병 수발도 마다하지 않았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얻어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신념과 의지로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들의 보호자 노릇을 해 왔던 것이다.

1976년 이 마을 천주교회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는 이 갸륵한 걸인의 숭고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 걸인의 티 없이 맑은 이타적인 삶에서 성직자로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오 신부의 마음에 꽂혔다. 다리 근처에서 기다리다 동냥에서 돌아온 노 걸인을 따라 다리 밑으로 들어간 오 신부는 거지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결심했다. 병들어 죽어가는 걸인 18명을 먹이고 보살피는 노 걸인의 성스러운 일을 자신이 이어받기로 했다.

오웅진 신부는 이 일을 계기로 불우이웃을 위한 사랑이 꽃피는 ‘꽃동네’를 만들게 됐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의 사회복지시설 ‘꽃동네’는 한 노 걸인의 거룩한 인간애가 모태가 돼 태어난 것이다. 지금은 장애인, 독거노인, 버려진 아이 등 2천여 명이 모여 사랑을 꽃피우며 살고 있다. 한 사람의 작은 선행이 큰 선행을 불러온다는 섭리를 ‘꽃동네’가 입증시키고 있다.

최근 ‘꽃동네’에서 사랑을 베풀고 있는 평균 나이 팔순의 세 천사가 화제가 됐다. 인곡자애병원 최고령 의사 최영일씨와 바느질 봉사로 ‘꽃동네’가 쓰는 침대 시트, 환자복 등을 만들고 있는 조봉숙씨와 김경순씨가 주인공들이다. 올해로 40년이 되는 ‘꽃동네’가 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노 걸인의 사랑의 정신이 이어져 오는 덕분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