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감상> 슬프다 생각하고 하늘을 봤을 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너무나 맑아서 슬픈 하늘이었다. 아름답다 생각하고 노점 좌판에 깔린 겨울 배추들을 봤을 때 그 질기디 질긴 생명력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세상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다 다만 내가 슬프거나 기쁠 뿐이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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