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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삼국유사 사업본부장
작년 10월 이후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경악과 격동에 빠뜨리고 있는 일명 최순실 사태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꼬이고 격앙되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잠겨있던 갖은 부정적 요소와 집단 콤플렉스들이 이 기회에 분출되는 동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새로운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검에서 많은 사람이 구속되고 사태의 진상이 파헤쳐지고 있다. 그 가운데 최순실은 강압에 의한 수사라고 항변하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말다툼이 있었다.

대통령이 KBS 같은 대형 매스컴이 아닌 조그마한 인터넷 뉴스에 나와서 장시간 대담하였다. 고객이 들끓는 유명 백화점을 피하고 시골 구멍가게를 선택한 것과 같다. 원래 민심에 의하여 대통령하야를 요구했고 탄핵을 진행 중이지만, 민심이 둘로 갈라졌다. 탄핵 불가를 요구하는 태극기가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보다 더 높은 기세를 보일 정도다. 참으로 혼란한 시기이며 우국지사가 밤잠을 설칠 때이다. 진실을 살피고 현재의 사태가 가져올 결과를 예상하고 그 결과가 초래할 장기적인 국익까지도 헤아릴 냉안(冷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서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로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이 생각난다. 그는 우리의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우상(偶像)’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오류에 대해 논하면서 4가지 우상(Four Idols)을 이야기하였는데, 종족(種族)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市場)의 우상과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종족의 우상은 자신이 소속된 종족이나 집단의 입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꽃이 나를 보고 웃는다’는 말은 인간이란 종족의 입장이란 것이다.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나왔는데, 장자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편견이다. 시장의 우상은 직접적인 관찰이나 경험이 없이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서 그럴 것이라고 착각하는 오류와 편견으로서, 정제되지 않은 언어와 충분히 분석되지 않은 정보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극장의 우상은 주인공이 대사를 외우듯 유명인의 말을 맹종하는 습성을 가리킨다. 이상과 같이 베이컨의 우상론은 편견이나 선입견의 정확한 인식을 가로막는 힘을 걱정한 것인데, 금강경에서도 인간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壽者相)이라는 ‘사상(四相)’ 때문에 실상을 바라보지 못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감히 진리의 세계를 보는 경지는 논할 수 없거니와, 작금의 사태에서 우리도 모르게 시장의 우상과 극장의 우상이 작동하고 있지 않나 걱정된다. 좋은 소문은 걸어가고 나쁜 소문은 날아간다고 한다. 누가 잘했다고 하면 “설마 그랬으려고” 라하고 누가 나쁜 짓 했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 “맞아. 그럴 줄 알았어”라 반응하는 게 인간 심리다. 이것이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 발전하면 사회가 분열된다. 자기 소속 집단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의견은 골통이거나 멍청하다고 본다. 매스컴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은 극장의 우상의 극대치다. 그것이 반복 재생산되면 선전 효과까지 가세하여 그 위력은 걷잡을 수 없다. 어느 유명작가는 촛불시위를 일러, “한국인이 보여준 아름다운 시위, 향기 나는 시위, 분노를 표출할 때도 미래를 생각…” 라고 극찬하였는데, 현직대통령의 인형을 단두대에 올려 목 자르고 그 목을 막대에 꽂으며 환호하는 행동이 과연 아름답고 향기 나는 시위인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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