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세 입암28경둘레길 조성 추진위원장
포항시 북구 죽장면의 입암서원을 위시한 입암28경은 우리나라 문학사나 사상사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이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여헌 장현광(1554∼1637)과 여러 학자의 사상을 오롯이 품고 있는 사유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헌은 1597년에 지은 ‘입암기’에서 입암을 중심으로 빼어난 경치를 골라 이름을 짓고 입암28경은 세속과 떠난 평화로운 세계, 평화와 자유가 넘치는 이상향의 세계를 노래했다. 그는 ‘입암기’에서 입암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주변의 산과 시냇물, 골짜기 등의 명승 28곳 하나하나에 이름을 부여했다. 즉 북극성을 입암으로, 북극성 주변 28곳을 28수 별자리에 견주었다.

조선시대 3대 시가문학가 노계 박인로(1561∼1642) 선생도 여헌의 학덕을 흠모해 입암으로 찾아와 입암28경을 소재로 한 가사와 시조를 창작해 경치와 절경을 노래했다. 한때 민가라고는 없던 척박한 입암에 들어와 개척한 분은 동봉 권극립(1558~1611) 선생이다. 영천 자양에서 거주하던 선생은 임진왜란 무렵 이곳에 첫발을 들여놓았다가 입암의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 정착하기로 한다. 먼저 마을을 이룬 후 선생은 벗이자 유학자인 윤암 손우남(1564~1623), 선생의 처질인 우헌 정사상(1563~1623), 수암 정사진(1567~1616) 형제를 불러들였고, 이어 문강공 여헌 장현광까지 이곳으로 이주하게 했다. 이들은 입암서원을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며, 입암의 아름다운 풍광과 선비로서의 고고한 삶을 찬미하는 시문학 창작에 여생을 바쳤다.

‘입암28경’은 ‘주역(周易)’ 개념에서 근거한 철학적 사유에서 비롯됐다. 조선시대 때 별자리란 곧 인간사회의 질서를 상징했다. 선생은 별자리의 위치와 이름을 정하고 이를 ‘수(숙·宿)’라고 했다. 또 동서남북 네 구역마다 7개로 정해 모두 28수가 되도록 했다. 이어 노계를 비롯한 수많은 문객들과 동봉의 여러 자손 및 우재 손중돈의 후예들인 경주 손씨들도 28경과 입암을 주제로 하는 여러 시작을 남겼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입암28경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동봉 권극립 선생의 후손 안동권씨 복야공파 입암종회(회장 권영진)는 최근 28경둘레길을 조성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 입암28경둘레길 조성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11~12월 5개 코스를 답사했다. 코스별 길이, 기반시설, 편의시설, 정자, 종합안내판, 테마별 안내판, 이정표 등을 감안한 설계 검토 결과 4.78㎞에 4억5천7백만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안동권씨 복야공파 입암문중에서는 1억1천4백만 원의 예산을 편성해 직접 제1코스(동봉성재길 2.215㎞)를 조성하기로 결의하고, 나머지 4개 코스는 포항시가 추진할 수 있도록 협의를 해 나갈 계획이다.

입암28경둘레길은 포항시 그리고 죽장면의 대표적 역사문화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둘레길은 힐링과 함께 조선 성리학자들의 시문학과 철학적 사유를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둘레길이 성공적으로 조성되기 위해서는 안동권씨 복야공파 입암종회의 힘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지역의 기관, 언론계, 교육계, 재계 등 많은 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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