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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0세기 초의 지구적 근대화 물결에 자주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였다. 두 번의 왜란을 겪고도 늘 한 수 아래라고 치부하던 일본에 결국 나라 전체를 강점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다. 모두가 잘못된 위정자들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국민은 지배체제의 변화를 자기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저 죽지 않고 살아남는 일에 최선을 다한 평범한 이 땅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문제는 ‘‘부역자”들이다.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은 해방 이후에도 해방 전과 다름없는 어려운 삶을 살아야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친일 부역자들이나 그 후손들은 해방 이후에도 해방 전과 다름없이 권력을 이어나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잘못된 역사의 필연적인 산물일 뿐이다. 대통령을 다른 누구로 교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사를 바로잡고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다. 

우리나라의 근본 골격은 두말할 필요 없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자본주의는 1원 1표 제도다. 주식 1주를 가지고 있는 자는 1표의 의결권을 가질 뿐이다. 주식이 없는 자는 의결권도 없다. 반면 민주주의는 1인1표제도다. 누구든 일정한 나이를 먹었다면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1표의 투표권을 가진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이라면(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자체다) 다수의 가난한 자들(주주권을 갖지 못하거나 조금밖에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한 경제정책이 당장 실시되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문제는 이른바 계급배반투표다. 이것은 정치가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쇼가 되어버리고 선거가 하나의 이벤트가 되어버린 결과이다. 우리의 지난 선거들을 보라. 가난한 사람들이 오히려 재벌들에 대한 법인세 인상에 극력 반대하고 최저임금의 인상에 반대한 정당을 위하여 투표하는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1인 1표의 소중한 민주주의의 힘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그저 정당의 공천을 받은 자들 중의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치에서의 소비자 주권을 실현하여야 한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정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뭉쳐 ‘무상급식’, ‘공교육 내실화’를 정치 상품으로 내놓자. 이를 실천하겠다는 후보들이 그들에게 먼저 연락해 오도록 하자. 지원자가 둘 이상이라면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그들 중 하나를 골라내자. 그런 다음에 실제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패거리 정당들이 내놓은 후보를 제쳐놓고 그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만약 그가 예전의 누군가처럼 당선 후 곧바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약을 부득이 지킬 수 없다’고 한다면 주민들이 그를 즉각 소환할 수 있게 하자. 같은 마을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이 흘러 보육문제보다 노인문제가 더 중요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을마다 그 마을에서 필요한 정치적 수요가 달라질 것이다. 그에 따라 다양한 정치적 수요에 가장 잘 대응할 수 있는 정치상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실천할 후보를 고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 각자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정치 상품을 토론과 집회를 통하여 스스로 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학교에서, 지역공동체 또는 생활협동 조합, 노동조합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통하여 잘 교육된 시민만이 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 혁명의 완성은 단순한 지배권력의 교체, 정권 교체만이 아니다. 우리는 더 큰 것을 꿈꿔야 한다. 바로, 국민이 진정 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그런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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