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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의 고전시담]한유(韓逾) 과홍구(過鴻溝)

김진태 전 검찰총장 등록일 2017년02월05일 15시30분  
龍疲虎困割川原 (용피호곤할천원·용과 범이 지쳐 산하를 서로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 (억만창생성명존·억만 백성들이 목숨을 부지했네)
誰勸君王回馬首 (수권군왕회마수·누가 말머리를 돌리자고 권했나)
眞成一擲賭乾坤 (진성일척도건곤·하늘과 땅을 건 한판 승부를 겨루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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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이 시는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의 고사를 읊은 것으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이란 말의 유래이기도 하다. 진(秦)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천하 제패를 위해 싸우다가 지쳐 하남성의 홍구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고 휴전에 들어갔다. 항우는 포로로 잡고 있던 유방의 아버지 등을 돌려보낸 후 팽성으로 돌아갔고, 유방도 지친 군사를 이끌고 철군하려 할 때 장량 등이 “지금이 항우를 멸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때를 놓치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꼴이 될 것입니다”라며 간했다. 유방이 이를 받아들여 항우를 추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고 천하를 얻었다. 뒷날 한유가 홍구를 지나가다 이를 기억해 내고는 지은 시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억만창생이 무너지고 있는데!

중국 당나라 때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한유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수의 손에서 자랐다. 일찍이 글에 재능을 보였으나 과거에는 늦게 합격하여 벼슬길에 나아갔다. 재상 배도(裵度)를 따라 회서절도사 오원제의 토벌에 공을 세워 형부시랑이 되었고 유명한 ‘평회서비(平淮西碑)’를 지었다. 헌종이 법문사의 불사리를 궁중으로 들여 공양하려 하자 ‘부처는 믿을 것이 못 된다(佛不足信)’라는 취지의 표(表)를 올려 대로한 헌종이 사형에 처하려 했지만 배도 등의 간청으로 사형은 면하고 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이후 병부시랑, 이부시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57세에 타계했다.

창려 선생으로 불린 한유는 시인으로서는 새롭고 기인한 어구를 많이 사용하는 난해한 시를 주로 써 백거이에 비교되었고, 문장은 육조 이래의 병려체(변려체·문체의 한 가지로 문을 꾸밈에 있어서 사자구(四字句)와 육자구(六字句)의 댓구를 사용하여 음조를 맞추는 화려한 문체)를 버리고 한대 이전의 자유로운 형식을 표본으로 하는 고문(古文)주의를 주도하였는데, 이는 그의 사상적 기반이었던 유교의 부흥과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서 당연히 불교나 도교의 배척에 앞장섰다. 또한 ‘스승이란 나아갈 바를 전해 주고, 방법을 알려 주고, 의혹을 풀어 주는 존재이다(師者所以 傳道 授業 解惑也)’로 유명한 ‘사설(師說)’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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