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지적 자산은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퇴행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문명국가가 살벌한 주먹, 하드파위만 과시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휘두르며 그들이 지금까지 구축해 온 소프트 파워는 내팽개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얘기다.

미국이 세계 지도자 국가로 자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력한 하드파워에 자유 민주주의, 공정과 포용을 핵심 가치로 하는 소프트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세계는 부국강병을 토대로 한 하드 파워, 곧 경성(硬性)국가의 시대로부터 문화를 토대로 한 소프트 파워, 곧 연성(軟性)국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문화의 세기인 21세기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학자들의 전망이 빗나가고 있다. 세계 국가들이 닮고 싶어 했던 미국이 근육질의 하드파워를 과시하는 나라로 돌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한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이미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미국제품을 사고, 미국 사람을 고용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하드파위의 한 축인 경제 부문과 함께 다른 축인 군사부문에서도 연일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난민과 무슬림의 입국을 제한·금지한 반이민 행정명령을 내리고 멕시코 국경엔 만리장성 같은 철의 장막을 치고 있다. 이민자로 시작된 나라 미국이 자유로운 왕래조차 막겠다고 나선 만행에 가까운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은 시스템화된 나라여서 대통령 한 사람의 판단과 결정으로 정책이 실행되지는 않을 것이라 전망했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되돌아 보면 개방과 포용의 정신을 가진 나라가 폐쇄와 분리를 내세운 나라를 이겼다. 트럼프의 미국도 이런 역사적 법칙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사고가 데칸쇼 시대의 고결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역사도 자꾸 퇴행을 되풀이 하는 것이란 점이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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