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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여태껏 탐방한 조형물 가운데 ‘자유의 여신상’은 최고의 감동이었다. 대서양 하늘에 드리운 먹구름과 해풍에 날리는 이슬비 속의 장엄한 옥빛 자태는 압도적인 흥분감 그 자체였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귓전을 때리는 ‘아이러브 뉴욕’ 노랫소리, 갑판에 운집한 관광객은 다들 턱을 쳐들고 응시했다.

뉴욕 항 리버티 섬에 세워진 동상은 청동으로 주조돼 산화된 밝은 녹색을 띤다. 엄숙한 표정과 달리 친근한 색상이다. 특히 횃불로 상징되는 자유와 희망이란 메시지는 후광처럼 찬연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성 이삭성당 근처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의 합금이다. 푸른 녹이 얼룩처럼 채색된 청동 유물을 보면 고풍스러움과 역사의 더께가 느껴진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청동으로 건조된 조형 미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촐랑이 듯 반들거리는 스테인리스강이나 산화물이 너저분한 주철에 비해 고색창연한 품위가 흐르기 때문이다.

공공시설에 세우는 미술품은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본다. 작가, 즉 창작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예술 세계를 펼치고 대중과 공감을 나누는 자리이다. 당연히 나름의 가치관을 구현하는 작품을 구상하게 된다. 하지만 관람자인 시민의 처지에선 미관과 볼거리에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여긴다. 예술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지 못한 산책객이 태반이기에 그러하다.

턱없이 난해하거나 일반적 정서와 괴리감이 클 때는 중인의 미움을 받는다. 뉴욕 맨해튼에 설치됐다가 철거된 ‘기울어진 호’라는 조형물이 그랬다. 연방 플라자 공간에 세워진 작품은 직선 통행을 방해하고 행인이 돌아가게끔 만들었을 뿐 아니라 흉물스러운 철판 때문에 연방 공무원의 반대로 사라졌다. 예술품의 존재는 서로의 온기가 전해지는 사랑의 메커니즘과 비슷하다.

도시엔 ‘매직 텐(Magic 10)’이란 개념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열 가지 매력적인 장소를 뜻한다. 범위를 좁혀서 동네나 마을도 동 정의가 적용되리라 생각된다. 지금 거주하는 지역의 환경이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고, 살고싶은 정주성과 애향심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한 지역의 명소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서관과 공원이라고 여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공립도서관이 단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는 동네는 축복받은 매직 텐을 두 가지나 가졌다. 바로 나루여행길과 포은중앙도서관이다. 한때는 포항의 장벽처럼 유리됐던 폐철도 부지가 상전벽해의 변신을 하다니 놀랍다. 실개천과 잔디밭이 이어진 산책로를 걷노라면, ‘모비 딕’ 형상의 도서관이 나온다.

나루여행길 공원엔 네 점의 조각품이 조성됐다. 청동과 철제가 각각 두 점씩이다. 작품의 소재와 해설을 곁들인 금속판도 놓였다. ‘무제’라고 명명된 한 소작은 철조 기둥 위에 다리를 감싸고 앉은 철골 여인의 형상. 파편화된 기호와 조각으로 땜질한 듯 얼기설기 구멍이 뚫렸고 내부는 비었다.

한데 무쇠로 만든 미술품이라 벌겋게 녹이 슬고 빗물처럼 흘러 시선이 불편하다. 예술에 무지한 나 혼자만의 트집일까. 장식으로의 기능을 심하게 훼손하는 조형물이 공공장소에 타당한지 의문을 갖는다. 수시로 공원을 애용하는 시민으로서 피력한 속 좁은 소회이다. 정중히 해당 작가님의 해량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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