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싸이의 인생행로에 대해 만화 같다는 사람이 많다. 예명 ‘싸이’는 ‘미쳤다’는 뜻의 ‘싸이코(psycho)’서 따왔다. 사업가 아버지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싸이는 국제경영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유학했다. 아버지의 기대보단 자신의 개성을 고집, 버클리음대에 입학해 부모에게 실망을 안겼다. 하지만 이 실망이 싸이에겐 성공의 첫걸음이 됐다.

자신이 작곡한 곡이 팔리지 않아 직접 가수로 나섰다. 뚱뚱한 몸매, 부담스러운 비주얼, 제멋대로의 막춤. 데뷔 당시 싸이의 모습은 엽기 그 자체였다. 그러나 대중은 가수 같지 않은 가수에 열광했다. 한참 인기 가도를 향해 질주하던 중 대마초 사건으로 2년의 자숙기간을 가졌다. 그 후 군에 입대해 병력 의무를 마쳤으나 병력 비리에 말려 두 번이나 군 복무를 해야 했다. 잇단 좌절을 딛고 싱어송 라이트로, 공연 기획자로 재기했다.

2012년 7월 15일 한 장의 음반이 그의 인생을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완전히 갈랐다. 타이틀곡 ‘강남스타일’이 수록된 6번째 앨범이 그 운명의 주인공이다. 이 뮤직비디오가 온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다. 그날 이후 싸이는 이제까지의 싸이가 아니었다. 지구촌 수십억이 말춤을 추면서 싸이는 월드스타로 구름 위를 날았다. 싸이의 벼락성공을 두고 전문가들은 ‘갑자기 뒤집히는 순간’을 뜻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현상’이라고 했다. 뭔가를 살짝 건드려 이제까지 지속되던 상태가 돌변, 엄청난 변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것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 시작된 변화가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대 격변을 일으키는 임계점이 ‘티핑포인트’다. 잘 알려져 있지않던 상품이 갑자기 뜨거나 별로 주목받지 않던 책이 베스트셀러로 급부상하는 것이 바로 티핑포인트 현상에 의한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 그를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지율 하락에 고심도 컸겠지만 ‘티핑포인트’의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대선 레이스 대뷔 20일 만의 조기 낙마가 아쉽다. 온갖 난관을 극복, 티핑포인트 기회를 잡은 싸이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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