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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매일 저녁 운동을 하러 가는 곳(검도교실)까지의 거리는 직선으로 100m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 짧은 거리를 걸어서 가다 보면 묘한 느낌이 듭니다. 부지불식간 모종의 시간 여행을 하고 것 같은 기분에 젖는 것입니다. 마치 그곳이 ‘시간의 뒤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불과 몇 걸음 앞에는 고층빌딩이 즐비한 시가지인데 몇 걸음 뒤 그 골목 언저리에는 여태 수십 년 전의 풍광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풍광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모두 옛사람들입니다. 저희 또래가 젊은 축에 속합니다. 팔순의 이발소 아저씨는 저만 보면 “관장님, 보기 좋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십니다. 나이 지긋한 제가 검도교실의 관장이라고 지레 단정을 하신 거지요. 새로 든 이웃이 비교적 허우대가 멀쩡해서 기분이 좋으신 모양입니다.

아이들 떠드는 소리, 발 구름으로 우당탕거리는 소음도 괜찮으시답니다. 좀 시끄러워야 사람 사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최근에는 경사도 있었습니다. 기와지붕이 높은 멋쟁이 한옥 한 채가 큰돈을 들여 새 단장을 벌이고 있습니다. 수억 드는 돈에 비해서는 소출이 아주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애지중지하시던 집이라 육십 난 아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때를 빼고 광을 냅니다. 먼지도 꽤 나지만 이웃들이 모두 양해하십니다. 일이 다 끝나면 골목도 우리 마음도 꽤나 훤해질 것 같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저도 인근의 주택을 하나 구입해서 앞마당 뒷마당이 넉넉한 땅 집으로 개조해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만 식구가 결사반대여서 성사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러나 계속 고집은 부려볼 생각입니다).

동네 전체가 도시의 뒤뜰이지만 그 안에서도 또 뒤뜰 역할을 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큰 골목 앞쪽으로 건물들이 들어서고 뒤쪽에 있는 옛날 집터들이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는 곳이 있어서 마치 동네 뒤뜰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개중에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 생가터’라는 팻말이 붙은 곳도 있어서 일말의 신기한 느낌마저 줍니다. 옛날에는 이곳의 야트막한 동산이 오포(午砲)를 쏘던 곳이어서 아직도 오포산 자락으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계신답니다. 다니면 다닐수록 정이 드는 곳입니다. 뒤뜰은 앞마당과는 달리, 감추고 싶은 것들이나 은근히 혼자 즐기고 싶은 것들이 놓이는 장소입니다. 장작더미도 높이 쌓아놓고, 장독대도 가지런히 늘어놓고, 얌전한 화초 몇 그루 심어 놓고, 툇마루에 앉아 석양의 고즈넉한 풍광을 음미하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런 소박한 ‘뒤뜰의 미학’이 여직 남아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큰돈 안 들이고 누리고 있는 ‘시간의 뒤뜰’에 대해서 몇 자 적다보니 문득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괴산 제월리 고택을 일견하던 30년 전의 일이 떠오릅니다. 선생이 감옥에서 나와 서울에 올라가기 전 일시 머물렀다는 곳인데, 집은 볼품이 없었지만, 뒷마당 구실을 하던 야트막한 동산의 그 수려한 풍광에 큰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굉장했습니다. 약간 과장하자면 영락없는 ‘쓸쓸하고 아름다운 신의 집터’였습니다. 사람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과분한 땅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원래 그 집은 묘막(墓幕·묘지기가 사는 집)의 용도로 지어졌던 것이라 하니 당시 제 느낌이 그리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대선판의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습니다. 누가 대세고, 누가 불출마하는지, 결국은 누구와 누구의 대결이 될 것인지, 유권자의 궁금증들이 하나씩 걷히고 있는 중입니다. 작은 바람 하나 사족으로 붙이겠습니다. 부디 ‘뒤뜰의 미학’을 아는 분이 최종적으로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큰 욕심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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