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봄 같지 않은 봄’이라는데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도 어수선해서 올 봄을 두고 한 말 같다. 그야말로 시국이 하수상 해서 잠깐이나마 고개 돌려 꽃이나 보며 시름을 달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미 곳곳에 봄꽃 소식이니 말이다.

사진기자가 멋진 매화를 찍어서 새봄 소식을 전했다. ‘매화’하면 퇴계가 떠오른다. 퇴계 이황은 매화를 몹시 좋아해서 늘 가까이 뒀다. ‘매형(梅兄)’이라 부르며 100편이 넘는 매화시를 짓기도 했다.

고봉 기대승의 ‘삼가 퇴계 선생의 매화시에 차운하다(仰次退溪先生梅花詩)’를 보자. 고봉은 “선생의 깊은 맹세 한매에 붙였는데/ 서울의 풍진 속에 잘못 홀로 왔네/ 돌아갈 생각 드넓은데 봄이 저물지 않아/ 진정 성긴 그림자 사랑하며 시듦을 위로하네”라며 퇴계에 대한 그리운 정을 담았다.

“그대를 모진 눈과 바람 속에 맡겨두고/ 창 안에서 맑고 고고하게 탈 없이 지내네/ 고향에 돌아와 누워 그리움 그치질 않는데/ 신선의 참됨이 티끌 속에 있으니 애석하구나” 퇴계는 한양의 고봉에게 화답했다. 고봉이 32세, 퇴계 58세에 둘은 처음 만나 26년의 나이 차도 초월한 채 13년 동안 1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성리학에 대해 논한 일화는 변하지 않는 매화의 향기처럼 전해진다.

안동 도산서원 안마당에는 봄이면 백매가 퇴계의 시심이 덧나듯이 가지 가지에 꽃 피우곤 한다. 매화를 사랑한 퇴계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매화와 함께 했다. ‘퇴계집’ 연보에는 “이날 아침(1570년 12월 8일) 모시고 있던 사람에게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오후 다섯 시 경에 누운 자리를 정돈하라 하셨다. 부축하여 일으키니, 앉으신 채 조용하게 떠나셨다”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은 아름다운 여인과 한참 얘기를 했는데 문득 정신이 들자 여인은 없고 향기로운 매화나무 아래 있었다는 이야기로 매화에 대해 흥감을 떨었다. 지역에서 매화꽃 좋기로 소문난 포항 청하중학교의 매화밭에는 아직 매화가 피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교 박창원 교장이 3월에나 핀다는 이 매화의 꽃이 피면 기별을 주기로 했으니 기다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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